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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희망 , 깊은 정, 달성

너와의 계절 

by. 모뮬(@HQ_MoooMuuuull)

   우리 어릴 적 어색한 만남을 기억해. 엄마 뒤에 숨어서 얼굴만 빼꼼 내밀던 너, 어릴 때 낯가리는 모습만 생각하면 웃음이 새어 나오는데, 서로 인사하라는 말에 어색한 눈 맞춤만 이어졌지.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나의 처음이 쿠로여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야. 난 그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귀찮게만 생각했었는데, 쿠로는 나에게 다가와서 배구공을 건넸지. “같이하자!” 밝은 얼굴에 흙 묻은 모습으로 온 너의 제안에 난 바로 대답하고 있더라. 대답과 동시에 너는 날 이끌고 있었어. 아마도 난 즐거워 보이는 널 밀어낼 수 없었던 거야. 사실은 운동 그런 거 땀 흘려서 하기 싫었는데, 쿠로의 즐거움에 나도 함께하고 싶었던 건가 봐. 그렇게 나의 배구가 시작됐어. 딱히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았어. 그저 매일 하던 거니까. 안 하면 허전하긴 하더라. 내가 배구의 재미를 느꼈을 때, 주위를 돌아보니 시간이 많이 흐르고 변했더라. 평소 시야에선 쿠로만 보였나 봐. 나의 시작이 쿠로가 아니었다면 지금과는 달랐겠지? 사실 이젠 네가 없는 게 상상이 안 되는데. 지금도 어느 한 가지만 생각해도 자연스럽게 연결고리가 너로 잡히더라. 나에게 쿠로가 그만큼의 의미인 거야. 그래서 너와 닿았을 때. 담담함을 잊었지 뭐야.

 

 

   고등학생 때를 생각하면 본격적으로 배구를 시작했을 때, 너의 성장에 한두 번 놀란 게 아니었어. 점점 차이 나는 키와 체격에 어릴 때와는 다르게 다가왔지. 쿠로는 그냥 쿠로인데 말이야. 항상 밥 더 먹으라고, 채소 먹으라고 보채기도 했지. 정말 싫었는데…. 내가 연습을 대충 하는 움직임에도 금세 눈치채고 날 건드렸어. 물론 난 개의치 않았지만, 이게 우리 일상이었던 거지. 어느새 주장이라는 책임감을 지고 모두를 끌어가는 모습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 코트 위에서 많은 수를 생각했고, 경기의 흐름을 읽으며 어느 것에도 휩쓸리지 않게 정신력을 키웠지. 쿠로, 너는 알까. 내가 그렇게 한 원동력이 너와 계속 경기를 뛰고 싶었기 때문이었어. 아무 생각 않았는데 의식하고 생각해보니 그렇더라. 처음에는 쿠로가 배구 하니까 나도 따라가야지 했어. 그리고 나름 재미를 더했어. 너는 모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고등학교의 배구는 꽤 즐거웠어. 연습도, 시합도, 여름 합숙도. 귀찮았지만 재밌었어. 한결같은 잠버릇에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도 했고. 너는 참 제 위치에서 한결같음에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친구였어. 그리고 지금은….

 

 

   다른 복잡한 생각이 날 때마다 너를 찾았어. “네가 나에게”가 아닌 “내가 너에게”였던 거지. 그때마다 널 찾는 건 내가 여전히 어렸나 봐. 나의 둥지와 같은 너의 품으로 향했어. 복잡한 생각도 쿠로 옆에 있으면 안정감이 찾아와서 끝에는 필요한 생각만 남더라. 이런 게 신기했어. 그렇게 애썼는데 쿠로와 함께한다 해서 생각이 정리된다니. 그래서 단정 지었지. 이건 단지 편안함이 주는 안정감이라고 말이야.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어. 어느덧 3학년이 끝나고 우린 대학을 바라보더라. 그때, 성인이 되고서 너와 처음 떨어질 때 공허함을 느꼈어. 그 시간 동안 당연하게 여기고 일상이던 것들이 무너진다고 생각했지. 조금 두려웠어. 내가 홀로 설 수 있을까, 네가 없어도 괜찮을까. 내가 길을 잃으면 네가 날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자연스럽게 길들었는데. 별말 없이 집에 함께 간 게 쿠로라서 담담했던 걸까. 자꾸만 궁금증의 꼬리를 물더라. 한편으론 다짐도 하게 됐어. 그래도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금방 적응하잖아. 고민해도 달라지는 건 딱히 없을 거 같다는 거지. 그러다 스치듯 우리 같이 있는 모습 떠오르더라. 네가 날 바라보는 표정만큼 나도 너에게 달콤했을까, 쌉쌀했을까. 오히려 ‘켄마스럽다’ 라고 해주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 우린 졸업 후 뭐가 그렇게 슬펐던 걸까. 과분한 행복을 얻었기에 눈물이 났던 걸까, 담담하게 받아내고 있었는데 사진을 보니 내 눈에 눈물이 가득하더라. 티 났겠지. 그 뒤로도 우린 언제 공허했냐는 듯 시간을 채워갔지. 그리고 계절은 점점 따뜻해졌어. 학교 가는 길, 담장을 덮은 개나리가 봄을 알렸고, 새 시작이 오는 것에 다시 설레는 마음과 조금 두려운 마음이 이어졌어. 잠시 서로의 위치에서 이별인 듯, 떨어지려니 마음이 헛헛했지. 몰랐는데, 떨어지고 홀로서기를 하니까 알겠더라고. 그냥 다가왔어. 너의 빈자리가 느껴졌어. 그 뒤로 나는 변화된 환경에 딱히 적응하려 하지 않았어. 그래도 바뀌긴 했나. 나름 친구도 사귀었고. 근데 간혹 친구들이 “누구 찾아?”, “누구 기다려?” 하면서 묻더라고. 습관 밴 건가. 난 아닌데 여러 번 묻길래 놀랐어. 그때는 몰랐지. 학교에 다니면서 알겠더라. 내가 쿠로와 이렇게나 오래 붙어있었나. 생각 들더라고.

 

 

   한 학기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드디어 널 만나게 됐어. 그동안 서로 바빴던 티가 나더라. 그리고 네가 조심스럽게 속삭여준 것에 마음이 두근거려 겨우 정신을 잡고 있었어. 재촉하는 너에게 떠밀리듯 대답하긴 했지만, 정말 좋았어. 주변에는 새로운 것들이 가득했는데, 드디어 내 보금자리가 왔다고 생각했거든. 너와의 동거, 정말 기뻤어. 티 났을까? 쿠로라면 알아도 모른척했을 테니까…. 동거하면서도 학기 중에는 붙어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어. 어떻게 보면 각자의 시간을 갖게 되는 걸 수도 있지만 역시 쿠로가 없으면 허전해. 이런 허전함이 여태 정이라고 생각했어. 붙었던 시간만큼 깊게 새겨진 정 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너와 함께하면 자꾸만 쿵쿵거리는 마음에 놀라면서 내 마음에 솔직하게 묻고 답하는 시간이 늘더라. 이건 쿠로가 있어도 쉽게 내려지지 않는 답이었어. 오히려 더 복잡해졌지. 그 고민을 잡던 시간이 아마 지금, 이때를 대비한 시간이 아닐까 싶어. 언제나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은 채.

그래서였을까? 과거를 생각하면 한없이 생각이 많아지는 거 같아. 나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인 건지. 괜히 말도 늘어나는 거 같고. 이런 내가 어색한데, 쿠로는 항상 같은 눈으로 날 봐주더라. 그래서 ‘우리’라는 단어에 집착도 하게 된 거 같아. 우리는 서로의 성장을 함께했잖아. 우리만큼 서로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야. 집착으로 느껴지려나. 그땐 아니었는데, 지금은 맞을지도…. 쿠로는 지금 내 모습을 더 좋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은 한결같은 게 좋다고 생각해서. 너무 변해버리는 것도 안 좋잖아. 여기가 내가 변화되는 최적성 아닐까.

사실은 이런 마음 들키고 싶지 않았어. 지나가는 감정 같았거든. 그래서 감추고 안고 있었는데 아니더라고. 감추려는 마음은 점점 확신으로 다가왔고 그때서야 널 봤어. 나랑 같아 보였고, 그냥... 그래 보였어.

   며칠 뒤 떨리는 목소리에 용기를 낸 너의 말에 조금은 놀랐어. 나도 같은 마음이었어. 말 하려고 눈치 보다 새치기당해버렸는데, 그래도 쿠로가 먼저 말해줘서 고마웠어. 우리는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걸까. 나도 말을 해야 전달이 되는 건데. 머리로는 알지만, 입 밖으로 내뱉기가 힘들더라. 그래도 지금 이렇게 용기 냈으니까 알아주면 좋겠다. 나도 너의 행동에 대한 답을 해야 하니까. 함께 붙어있던 만큼 말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너무 과할까 봐. 너무 솔직해질까 봐. 말을 끊고 줄여야 했어. 그리고 내뱉지 않고 우리만 알고 싶기도 했고. 자랑 같은 건 별로.

너와 함께한 사계절은 한결같으면서도 달랐던 거 같아. 이제야 눈치챘지만, 쿠로 였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였던 게 아닌가 싶어. 나에게 사랑을 줘서 고마워, 쿠로.

#후기

안녕하세요! 개나리 꽃말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된 모뮬 입니다! 고민 끝에 합작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재밌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어서 행복했어요:) 사실은 캐릭터 해석이 부족해서 괜히 제가 캐붕을 일으키는 거 아닌가 생각을 많이 했답니다ㅠㅠ 켄마 시점으로 썼는데 부족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엉엉 ㅜ

지금도 제가 해석한 쿠로켄이 잘 맞을지 걱정도 많이 되지만, 이렇게 합작을 통해 더 알아가고 배우는 시간이었어요! 부디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합작에 참여하신 모든 분 수고 많으셨구 주최자님 멋진 합작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2020.08.19 Kuroken Flower Collaboration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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