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미취- 추억, 추상, 이별, 기억, 먼 곳의 벗을 그리워하다, 너를 잊지 않으리
왕복서간
by. Yuri(@123079_HQ)
※ 이 글은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왕복서간』과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왕복서간 - 십오 년 후의 보충수업>을 감상한 후, 썼습니다.
※ 이 글은 소설과 연극의 제목과 서간문 형식을 빌려왔을 뿐 내용과는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 야쿠 모리스케의 직업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쿠로오 테츠로 군에게
전략.
먼 곳에서 잘 도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이렇게 쓰면 되나? 근데 저렇게 쓰고 싶은데, 사실 쿠로가 비행기를 탄 지 한… 3시간? 밖에 안 돼서 묻기가 좀 그래…… 국제우편이니까 아마 쿠로가 도착하고도 며칠쯤 뒤에 편지가 도착하겠지? 한, 일주일? 이따 편지 보낼 때, 확인해봐야겠다.
사실 이렇게 빨리 편지를 보낼 생각은 없었는데 편지를 쓰기로 하고 가만히 누워있으려니까 뭔가 참을 수가 없어졌어. 그냥 계획한 걸 빨리 실행하고 싶은 기분이랄까…… 그런 거 있잖아. 뭔가 새 물건, 예를 들어서 새 게임을 사고 나면 빨리해보고 싶은 기분……? 그건 좀 다른가…… 아무튼 그런 거, 뭔가 하기로 한 새로운 일을 어서 하고 싶은 그런 거.
그렇다고 지금 쿠로의 부재가 막 의식되고 그런 건 아니야. 고작 세시간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느껴지는 건 지금 쿠로가 집에 있거나 뭐, 그래봤자 원정경기 갔다는 느낌 정도인데 누워있다가 머리로 ‘이제 쿠로가 없다.’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지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이게 부재를 의식한다는 걸까? 지금 세 시간밖에 안됐는데……. 어쩌면 쿠로가 지금 비행기 안이라서 연락이 불가하다는 사실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뭔가 마음은 잔잔한데 머리는 쿠로가 없다는 걸 인지시키려고 해서 기분이 이상한 거 같아. 이걸 인지 부조화라고 하는 건가…….
며칠 정도 더 있어 봐야 내 기분을 정확히 알겠지? 사실 내 기분보다는 쿠로의 기분이 더 생경하겠지? 나는 환경이 다 바뀌는 게 아니라 쿠로가 없는 건데, 쿠로는 배구 말고 모든 게 바뀌었잖아. 아니, 배구도 바뀌려나… 새로운 배구를 시작하려고 간 거니까. 쿠로 안 그래 보여도 환경에 예민하잖아. 물론 누구라도 새로운 건 힘들지만…. 편지를 쓰기 전에 잠깐 상상해봤어. 폴란드에 대해서는 중부 유럽에 속해있고 배구가 엄청 인기가 많다는 정도밖에 모르지만 어쨌든, 서양이니까 내 편견일진 몰라도 일본에서는 엄청나게 큰 편인 쿠로가 그 안에서는 보통으로 보일까? 같은 생각을 해봤어. 지금 190 좀 넘나? 폴란드는 가본 적이 없어서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코트 위에 있는 쿠로가 더 잘 상상됐는데 일본에서랑 크게 다른 게 없는 거 같아서 살짝 안심했어. 어디까지나 내 상상이지만…….
그래도 힘든 일이 있다면 꼭 말해줬으면 좋겠어. 새벽에 갑자기 전화해도 괜찮으니까 꼭. 이거 되게 쿠로가 할 거 같은 말이지만 애인을 멀리 보내놓고 나니까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 같아. 이젠 갑자기 내 방으로 날아 올 수도 없으니까. 알았지?
그럼 이만 쓸게. 모쪼록 그곳에서도 잘 지내길 바라며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20xx. 06. 20.
코즈메 켄마.
코즈메 켄마 군에게
전략
저는 잘 도착해서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잘 지내고 있나요?
편지는 잘 받았어. 내가 가자마자 편지를 쓰다니, 내가 없으니 좀 쓸쓸했나? 사실 나도 도착하자마자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오자마자 여러 가지 수속을 밟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폴란드어 과외도 받고 하다 보니까 어느새 네 편지가 와있더라고. 물론 그사이에 라인이나 전화도 했지만,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근데 편지 쓴 날이랑 우체국에서 찍힌 날인 보니까 쓰고 며칠 있다가 보냈구나?
편지 첫 줄을 보자마자 엄청 웃었어. 켄마 네가 설마 이렇게 격식에 맞게 편지를 쓸 줄이야. 그건 생각도 못 했거든. 지금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네 표정이 선하게 그려지는 거 같아. 그럴 리는 없지만, 편지에서 켄마 네 냄새와 일본의 냄새가 묻어온 거 같아서 일주일간의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어.
내가 머물고 있는 집도 구단에서 마련해 준 집이라, 이웃이 거의 구단 사람들이고, 그래서 아직 구단 내 사람들밖에 만나보지 못했지만, 여타 유럽국가가 그렇듯 이곳도 인종차별이라는 게 존재하니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 그래도 배구가 인기가 많아서 배구선수라는 걸 많이 티 내면 좀 나아진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들었어.
내가 속한 구단은 외국인 용병이 다른 구단보다 많기 때문인지 인종차별적인 분위기는 적은 편이야. 자신이 타국에 처음 왔을 때의 기분을 잘 알아서 그런지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더라고.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고. 무엇보다 나를 담당하고 있는 통역사이자 폴란드어 과외 선생인 헨리크 토카르추크 씨가 폴란드로 귀화한 일본인이어서 나를 많이 도와주고 있어. 일본 이름은 모리 유이치인데 아내를 따라서 귀화하면서 이름도 폴란드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하더라고. 나를 보고 엄청 반가워하면서 이곳의 일본 식자재 마트라든가, 일식을 취급하는 식당같은 곳들을 가르쳐줬어. 다음에는 일본 음식점에 데려가 주겠데.
아직 시즌 오프 기간이라 거의 훈련을 하고, 적응하기에 바쁘지만 새로운 스타일의 배구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조금 신기한 기분이야. 일본 프로리그에서도 뛰었지만 아, 내가 정말 배구 강국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나. 뒤처지지 않으면서 더 즐겁게 배구를 하고 싶어서 매일 노력하고 있어. 그래도 무리하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이곳의 이야기는 조금 더 적응하면 쓰도록 할게. 오늘은 여기까지. 나는 무사히 도착해서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밥 잘 챙겨 먹고, 잠 일찍 일찍 자고, 건강하길 바랍니다.
이만 총총.
20xx. 07. 05.
폴란드에서 쿠로오 테츠로.
***
쿠로에게
일본은 아직도 장마철입니다. 폴란드는 어떤가요?
답장받았어. 보낼 때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렇게 국제우편이라고 오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한참 동안 편지도 열어보지 못하고 봉투 겉면만 쳐다봤어. 살면서 국제우편을 받을 거라고는 거의 생각 안 했으니까. 아, 그리고 쿠로 편지 읽다가 괜히 편지 냄새를 킁킁 맡아봤어. 조금 낯선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다음에는 편지를 꺼내자마자 맡아봐야겠어. 여기서 폴란드로 보내는 우편값은 90엔 정도 하는데 거기도 비슷할까?
편지 앞에 말했듯이 여긴 아직도 장마철이야. 축축하고, 습하고……, 학교 다니기 불편해. 그나마 시간표를 잘 짜서 월요일이 공강이라는 게 감사할 지경이야. 월요일 아침부터 습하고 미어터지는 전철 타는 거 너무 끔찍한 일인 거 같아. 우산에 닿아서 축축하고. 아, 상상만 했는데도 불쾌해……. 그나마 장마 끝물이라는 거에 감사하고 있어.
요즘에는 종종 쿠로 방에 가 있어. 원래 쿠로가 없어도 쿠로 방에 잘 가 있었지만. 쿠로가 막 너무 그립고 그래서라기보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 쿠로 방에 갔는데 할머니께서 저녁 먹고 가라고 하시더라고. 요즘 아저씨도, 할아버지도 늦게 들어오셔서 할머니랑 둘이 저녁을 먹게 됐는데 할머니가 쿠로 잘 지내냐고 물어보셨어. 전화하긴 하시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보신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요즘 종종 저녁 얻어먹으러 쿠로 방에 가고 있어. 엄마도 내가 쿠로 집에 간다고 하면 좋아하는 눈치고, 할머니가 하신 음식도 맛있으니까. 옆에서 할머니 음식하시는 것도 나름 거들고 있어. 다음엔 꽁치 굽는 법 가르쳐 주신댔는데, 잘 할 수 있을진 모르겠어……. 잘 굽게 되면 나중에 쿠로한테 맛있는 꽁치구이를 해주도록 노력해볼게. 잘… 굽게 되면…….
할머니랑 같이 저녁 먹으면 밥을 너무 많이 퍼주셔서 힘들지만……. 내가 쿠로처럼 넉살 좋게 굴지 못해도 다 이해해주셔서 편하게 시간 보내고 있어.
아, 저번 편지에서 인종차별 얘기 나와서 그걸 전혀 생각하지 못해서 아차 싶었어. 그래도 같은 팀메이트 중에 외국인 용병이 많아서 괜찮다니. 쿠로, 은근 낯가려서 걱정했는데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거 같아서 조금은 안심이야. 음식들은 입에 맞아? 내가 쿠로 대신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있는 거 같아서 조금 미안하네……. 그래도 쿠로 가리는 건 없으니까, 괜찮으려나? 할머니도 그걸 제일 걱정하시던데. 음……, 그래도 일본과 관계된 사람이 있다고 말씀은 드렸어.
쿠로 정신없이 피곤한데 내가 괜히 편지 쓰자고 한 건가 싶기도 하다. 피곤하면 답장 천천히 써. 편지 못 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전화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럼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쓸게. 잔소리대로 일찍……, 자는 건 못해도 강제로 밥은 잘 먹고 있으니 내 걱정은 말라는 말로 이만 마치겠습니다.
이만 총총
20xx. 07. 14.
비 내리는 도쿄에서 켄마.
Dear. 켄마
친애하는 켄마 군. 잘 지내고 계신가요?
편지는 잘 받았어. 어때? 저렇게 시작하는 건. 격식 차리는 편지는 우리가 쓰기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 켄마 너도 그런 허례허식은 좋아하지 않잖아.
지금이면 도쿄도 장마가 다 끝났으려나? 이번 장마는 조금 길다고 하던데. 편지가 도착한 기간을 보니까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보낸 게 느껴져. 전화하면서도 장마 때문에 짜증 냈던 네 목소리가 편지에서도 들리는 것 같았어. 장마가 끝난 건 다행이지만 끝나고 본격적으로 더워질 텐데 걱정이다. 운동도 그만둬서 기초체력이 많이 떨어졌을 텐데……, 쓰러지진 않겠지?
여기 기후는 매우 평온해. 적당히 덥고, 적당히 시원해. 유럽 하면은 생각나는 그런 평화로운 기후에 꼭 맞다고 해야 하나? 켄마, 네가 딱 좋아할 날씨야. 겨울을 나지 못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올여름은 시원한 거 같아. 훈련하기도 좋고. 나들이하기도 좋아. 얼마 전에 구단 사람들과 훈련 겸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좋더라고. 사진 보낼 테니까 구경해.
사실 편지 읽으면서 감동했어. 우리 할머니까지 챙겨주다니……. 역시 예의 바른 켄마 군. 할머니가 가득 퍼주신 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을 네 모습을 상상하니까 웃음이 나와. 내가 그 모습을 꼭 봤어야 했는데. 할머니가 엄청난 일을 하셨네. 그리고 꽁치구이! 켄마, 네가 꽁치구이 해주면 진짜 감동일 것 같아. 아……, 먹고 싶다. 일본식 꽁치구이. 상상하니까 군침이 돌아. 여기 음식이 입맛에 잘 맞는 편이지만 그래도 일본 음식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 특히 꽁치구이 같은 건, 누가 포장해서 보내줄 수도 없잖아. 딱 구웠을 때의 그 맛이 있으니까.
켄마, 너랑 편지를 주고받다가 생각났는데 우리 소학교 다닐 때, 네가 나한테 편지 써줬던 거 기억나? 학교 숙제였지만. ‘가장 친한 친구에게 편지 쓰기’라는 주제로 편지를 써야 하는데 강제로 한 면을 다 채워야 했잖아. 편지는 학교에서 전달해 주니까 나는 아직 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너는 그날 집에 오는 내내 나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지. 나는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고. 결국 나한테 길게 편지를 써야 하는 게 짜증 나서 인상을 쓴 거였지만. 그때, 우편함에 꽂혀있는 편지를 받고 너무 놀라서 방에서 세 번 정도 정독했던 기억이 선명해. 아마 내가 그때 답장도 써줬었지? 옆집인데 우표 붙여서 우체통에 넣어서 도착하는 데 며칠은 걸렸는데. 그렇게 몇 번 편지를 주고받다가 옆집인데 이게 뭐 하는 거냐면서 네가 먼저 그만뒀었지. 그 후에 받은 편지는 졸업할 때마다 배구부에서 썼던 롤링 페이퍼가 다인 거 같아. 이번에 쓰는 편지를 제외하면. 나는 그때 그 편지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켄마 너는 어때? 잘 가지고 있어?
옛날 생각을 하니까 네 목소리가 듣고 싶다. 지금쯤 잘 시간이겠지? 아니……, 게임 하느냐고 안 자는 건 아니겠지? 자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전화는 내일 하도록 할게. 이 편지가 갔을 때는 이미 전화를 한 뒤겠지만.
그럼 잘 자도록 해, 켄마.
20xx. 07. 25.
자고 있을 켄마에게 평온한 폴란드에서 쿠로가
추신 : 여기서 보내는 우편 가격은 5-6즈워티 정도야. 대충 엔화로 170~180엔 정도? 일본이랑 거의 두 배가량이네. 물가는 괜찮은 편인데. 우편 시스템이 다른가 봐.
***
Dear. Kuro
안녕, 쿠로. 오늘 도쿄의 날씨는 맑음.
평온한 기후……, 부럽다. 여기는 장마가 끝나니까 찜통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게다가 곧 기말고사 기간이라 죽을 거 같아. 그래도 아마 할머니가 많이 먹이셔서 쓰러지진 않을 거 같아.
얼마 전에 토라랑 후쿠나가를 만났어. 그렇다고 배구부에 찾아가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어떠냐고 묻지 마. 아, 토라가 얼마 전에 잠깐 갔다고 하는데 감독님은 잘 지내신다고 해.
토라랑 후쿠나가한테 쿠로랑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더니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었어. 켄마, 너라면 전화나 메일을 더 선호할 거 같았는데, 스카이프도 있고. 라면서. 그래서 내가 먼저 제안했다고 했더니 너한테 그런 아날로그적 감성이 있냐면서 놀라더라고. 그런가? 하다가 제일 먼저, 내가 편지를 주고받자고 했을 때, 쿠로는 뭐라고 했던가, 무슨 생각을 했던가, 떠올려봤어. 쿠로가 그때 그랬지? 하긴 켄마, 너는 의외로 낭만적인 면이 있지, 라고. 그렇게 말하는 쿠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 후쿠나가가 묻더라고 왜 하필 편지를 주고받기로 했는지. 생각해보니까 아무한테도, 심지어 쿠로한테도 왜 편지를 주고받자고 했는지 얘기를 안 해줬더라고. 소학교 때, 친구에게 편지쓰기 시킨 것도 싫어서 인상을 썼으면서 왜 내가 편지를 쓰자고 했는지, 쿠로도 내심 궁금하겠지?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해서 전화나 메일을 안 할 것도 아닌데 말이야.
물론 전화나 메일이 말이 쉽지. 우리한테는 7시간 정도 되는 시차가 존재하잖아. 평소에는 쿠로가 나한테 많이 맞춰줬지만, 지금은 정해진 훈련 시간이 있는 쿠로가 나한테 맞추는 건 무리이고 내가 맞춘다고 해도, 또 인터넷의 발달로 전화료가 거의 안 나온다고 하더라도, 일본에서처럼 서로가 언제 어디서 무얼하는지 늘상 다 알아채고 눈치채기는 어렵겠지. 쿠로가 폴란드에서 러브콜을 받고 어느 날 밤엔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전화나 메일, 라인은 비교적 가벼운 연락수단이니까 어느 순간 피곤하거나 일상에 지치게 되면 서로의 연락에 대해 관성적으로 응대하게 되지 않을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 정말 우리한테는 해당하지 않는 말일까? 처음에는 어쩌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우리의 관계를 재점검 할 수 있는 기회. 우리는 소꿉친구고 지난 15년간 쿠로가 중학교에 올라갈 때, 고등학교에 올라갈 때, 대학에 갈 때 외에는 거의 떨어져 본 적이 없잖아. 누군가 쿠로를 찾을 때면 나를 찾고, 나를 찾을 때면 쿠로를 찾는 게 당연한 생활을 해왔으니까. 어쩌면 우리가 늘 함께해서, 그래서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마음속 한구석에서 비집고 나오는 의심을 일단락시키고 싶었어. 물론 이런 말을 하면 쿠로가 엄청 서운해하겠지? 우리의 믿음을, 마음을 더 확고하게 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조금 무서웠나봐. 사실 쿠로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나를 못 믿는 거였거든. 그래서 시험과 함께 극복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편지를 선택한 거야. 앞에도 말했지만, 전화나 메일, 라인은 가벼운 수단이라서 잠시 상대를 생각하고 말 수도 있지만, 편지라는 건, 온전히 상대를 생각하면서 쓰는 거잖아. 차분히 앉아서 서로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그에 대해서도 쓰고, 평소에는 낯간지러워서 하지 못하는 말도 적을 수 있겠지. 편지를 받아서 읽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일거고.
엄청 길게 말했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서로의 마음과 믿음에 대해 시험해보고는 싶었는데 나를 못 믿어서 약간의 보험(?)으로 편지라는 수단을 생각했다는 이야기야. 쓸데없이 횡설수설 길게도 썼네. 쿠로 섭섭하고 약간 씁쓸한 표정 지을 거 알지만 엄청난 귀차니스트인 내가 이렇게 손으로 직접 쓰는 편지라는 수단을 생각한 이유가 너를 믿으니까,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는 걸 다시 상기해주길 바라. 설명이 잘 안 되는 거 같지만 그냥 알아서 다시 알아들어봐. 오늘도 훈련 잘 받고, 다치지 말고 잘 지내. 다음에 또 쓸게.
20xx. 08. 02.
도쿄에서 켄마가
P.S. 맞다.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 나도 가지고 있어. 그렇게 인상을 팍 쓰면서 써놓고 몇 번씩 편지를 주고받았던 거 다시 생각해보니까 웃기네. 답장이 오니까 조금 설렜던 거 같아. 그러다가 아마 좀 질리기 시작했던 거 같아. 너도 알다시피 내가 쉽게 뭔가에 질리는 편이잖아, 어릴 땐 더 심했고. 오랜만에 한 번 꺼내 봐야겠다.
아마 내가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시간도 쿠로가 자고 있을 시간일 거야. 잘 자, 쿠로.
Dear. Kenma
안녕, 켄마. 한여름인데 잘 지내고 계신가요?
답이 좀 늦었지? 이번에 팀에서 일주일간 전지훈련 겸 연습경기를 위해서 다른 지역으로 가 있어서 편지를 늦게 받았어.
이곳의 오늘 날씨도 이제 좀 후덥지근해. 그래도 일본처럼 섬나라가 아니라서 그런가 좀 더 쾌적한 것 같아. 습도가 불쾌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이곳에 와서 새삼 깨닫는 중이야. 근데 생각해보니까 나는 주로 실내에서 운동하니까 제일 더울 시간에 기온이 어떤지 확실하게 알기는 어렵겠다.
할머니 덕분에 건강해질 켄마를 생각하니 내가 다 뿌듯한걸. 분명 쿠로 덕분도 아닌데 왜 쿠로가 뿌듯해하는 거냐고 생각하겠지?
이번 편지는 정말 감동이었어. 이 정도로 우리 관계를 소중히 하려고 하다니. 쿠로오씨는 읽다가 눈물이 날뻔했답니다. 근데 켄마 네 생각이 맞는 거 같아. 전화도, 라인도 물론 지금까지는 관성적으로 대답하거나 대한 적은 없지만, 편지라는 매체는 한 번 더 받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거 같아. 말로 하기 부끄럽거나 새삼스러운 것들도 쓸 수 있고, 다시 한번 곱씹게 하니까. 그리고 잊고 있었던 추억 같은 것도 생각나게 하고 말이야. 저번의 편지처럼. 확실히 우리 켄마군은 낭만적인 면이 있다니까.
켄마, 네가 우리의 관계를 재점검 할 수 있는 기회, 라고 생각했다고 했잖아. 맞는 말일지도 몰라. 나도 폴란드로 떠나오면서 사실 불안하지 않았던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어. 우리에게 7시간의 시차와 먼 거리가 있더라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자신. 너를 어느 한순간에도 잊지 않을 자신. 나는 지금 훈련을 하면서도, 공을 만지면서도, 네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어. 내 배구의 시작은 내가 이사 오기 전이었지만 본격적인 시작에서부터 새로운 배구를 위한 터닝포인트가 된 전국대회까지도 넌 늘 나와 같은 코트에 있었잖아. 내가 하는 새로운 시도의 시작에는 늘 네가 있었고, 그게 지금의 배구선수, 쿠로오 테츠로를 만들었으니 내 배구의 모든 순간에는 네가 있었다고 볼 수 있어. 아니, 내 모든 순간에. 만약 켄마 네가 우리 관계를 더이상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절대 우리 관계가 나로 인해 끝나는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나는 나만큼이나 켄마 너를 믿어. 네가 말했듯이 너는 뭔가에 쉽게 질려 하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이잖아. 그런데도 지난 15년간 내가 내민 손을 잡아주었고, 나를 선택해 주었고, 지금도 귀찮음을 감수하고 이렇게 편지를 써주고 있으니까. 꽤나 자신만만하게 들리지만 자신만만하기보단 너를 믿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어.
벌써 시즌이 한 달 정도 남았어. 여기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가네. 새로운 훈련방식이나 작전, 새로운 사람, 환경. 여기 온 지 두 달이 된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잘 적응해 가고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래도 종종 오랜만에 네 토스를 받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해. 그럴 때면 눈을 감고 이미지를 그려봐. 네가 토스할 때의 모습, 날아오는 공의 방향, 높이, 타이밍. 네 토스를 받아 스파이크를 쳤을 때의 느낌. 그렇게 한 번 이미지를 그리고 나면 네가 더 보고 싶어져. 고작 두 달이 됐는데 벌써 이렇게 네가 그리워도 되는 걸까? 이런 말을 팀메이트들에게 하면 놀림받으면서 아직 네가 살만하구나, 하고 나를 더 굴릴지도 모르겠어.
잠시 휴식 시간이었는데 이제 다시 훈련하러 갈 시간이야. 오늘은 여기까지 쓸게. 그리고 할머니 챙겨줘서 고마워. 더위 조심하고! 건강도 조심!
20xx. 08. 16.
시즌을 한 달 남기고 쿠로.
***
Dear. Kuro
쿠로, 안녕. 도쿄는 오늘도 맑아.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긴 하나 봐. 이번에 거의 40도까지 올라간 거 있지? 여름이 점점 더워지고 있어서 고통이야. 습도도 만만치 않고. 여전히 덥고, 만두 찜통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서서히 시원해 지고 있어.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이 더위에 어떻게 로드워크를 뛰고, 훈련을 했는지 모르겠어. 방학이라서 다행이야. 거의 나갈 일이 없으니까.
시즌이 벌써 한 달 가까이 왔다니. 네가 이곳에 없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과 별개로 조금 놀랍다. 이제 본격적으로 바빠지겠네. 컨디션도 관리해야 하고, 훈련도 해야 하니까. 한동안은 편지가 뜸해져도 이해할게. 나만 보내게 돼도 괜찮아. 시즌에 집중해야 하는데 부담 주는 건 사양이니까.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다들 시즌 시작하면 다 같이 모여서 경기 보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를 했어. 첫 경기는 그래도 다 같이 봐줘야 하지 않겠냐면서 들떠있더라. 어디서 볼지 다 같이 논의하고 있어. 새벽에 볼 확률이 높으니까 아마도 자취하고 있는 후쿠나가 집에서 보지 않을까 싶어. 벌써 다들 들떠있더라고. 정말 다들 배구바보들이야.
근데 만약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보고 싶다고 하시면 어떡하지? 시간상 너무 늦으면 힘들 수도 있으니까 녹화해놨다가 낮에 보여드리는 편이 낫겠지? 아직 시간이 있지만 고민되네.
러시아도 곧 있으면 시즌이 시작해서 우리끼리 쿠로랑 야쿠 군이랑 경기 일정이 겹치면 누구 경기를 봐야하냐 이야기하는 중이야. 리에프는 러시아 슈퍼리그는 방학이랑 겹치니까 러시아에 아예 직관가자고 했다니까. 그래서 카이 선배가 인기가 꽤 많을 텐데 표는 구할 수 있겠냐고 하니까 혼자서 열심히 고민하다가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러시아어 번역에 실패한 거 같더라.
폴란드도 배구는 인기가 많으니까 표 구하기 어렵겠지? 아닌가, 직관은 생각보다 많이 안 가려나? 거기서 경기하는 쿠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한 번쯤은 직접 보고 싶은데 일단 여름방학 기간이랑은 시즌이 안 겹칠 거 같아서 무리겠지? 이번 시즌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쉽긴 하네. 해외 나가서 첫 시즌이잖아. 일단 랜선으로라도 응원하도록 할게.
그리고 언젠가 내가 폴란드에 가게 되면 오랜만에 토스를 올려줄게. 몇 년간 쿠로가 받았던 토스와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쿠로가 그립다고 하니까……. 오랜만에 1인 시간차도 한 번 테스트해보고……. 그리고 나도 쿠로가 많이 그리워. 그러니까 쿠로 방에 가 있고, 가끔은 학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배구코트에도 가보고…… 아무튼 그래.
그러니까 일단 훈련 힘내고, 편지는 뜸해도 되니까 의무감에 보내지 말고, 시즌에 전념하도록 해. 쿠로도 건강도, 더위도 조심하고. 그럼 이만 쓸게.
20xx. 08. 23.
켄마.
Dear. 사랑하는 켄마 군.
오랜만의 편지입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더위는 이제 한풀 꺾였나요?
뜸해져도 된다고 하자마자 본의 아니게 편지가 뜸해져 버려서 미안해. 시즌이 다가오니까 더 정신이 없어. 일본 프로리그에서도 뛰었는데도, 새로운 건 새로운 건지 조금 당황하는 건 아직 있는 거 같아. 팀메이트들과 스태프들이 잘 받쳐줘서 훈련이나 컨디션 관리를 잘하고 있어.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고 있어. 부끄러워하는 켄마, 네 편지에도 감사하고 있고. 덕분에 긴장이 좀 풀리는 기분인걸?
다 같이 모여서 경기를 보겠다고 하다니, 정말 다들 감동인걸? 이 와중에 야쿠랑 경쟁이 붙다니. 야쿠에게 지지 않도록 해야겠어. 리에프 녀석 러시아에 직접 가자고 하다니……, 이와중에 번역 실패해서 표를 못 구한 건 너무 리에프답다. 아리사 누님이나 야쿠한테 직접 부탁하면 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거기까진 생각 못 했나 보군. 너희도 정말 여전하구나. 그래도 시간이 꽤 새벽일 텐데 다들 너무 무리하지 마. 특히 켄마, 새벽에 안 자고 학교 가고 무리하지 말도록! 게임도 마찬가지지만…….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신경 써줘서 고마워. 혹시 보고 싶다고 하시면 낮에 다시 보기로 보여드리는 게 나을 거 같아. 여기서 제일 이른 시간에 경기하면 일본 시간으로 9시 정도라서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보통은 자정이 넘어가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께는 무리일 거야.
아직 시즌 전이라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항상 경기가 매진이거나 그런 건 아닐 거야. 물론 폴란드는 배구가 엄청 인기가 많지만 16강 이상 가기 전까지 매진은 아닌 거 같아. 필요하면 표 구해준다고 하고 싶지만, 너희 학기 중이랑 겹치니 무리겠지? 여기까지 오는 비행기 표도 그렇고. 나도 내내 함께하긴 어려우니까. 그래도 폴란드에 올 생각은 있었구나. 거기다가 토스도 올려준다니 감동인데? 나를 이 정도로 그리워해 주다니. 네 토스는 그 누구의 토스와도 비교할 수 없어. 내게는 네 토스가 최고의 토스야.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항상 너니까. 근데 정말 진짜 보고 싶긴 하다. 이따가 오랜만에 영상통화 걸어봐야지. 어떤 반응일지 궁금한데?
회의 시간이야. 이제 가봐야 해. 아마 이 편지가 도착할 때는 곧 학기가 시작되겠지? 켄마, 너도 무리하지 말아. 그래도 네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힘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마워.
20xx. 09. 13.
기운을 받은 쿠로.
***
사랑하는 켄마.
일본에는 잘 도착했어? 물론 아직 한참 비행기를 타고 있겠지? 내가 떠난 지 3시간 만에 편지를 쓴 켄마 네 기분이 이런 걸까?
우선, 와줘서 정말 고마워. 켄마 너는 첫 경기를 놓쳤다며 투덜거렸지만, 그 날 관람석에서 너를 봤을 때, 나는 내가 환상을 보는 줄 알았어. 아마 옆에 있던 헨리가 ‘네 친구들이야?’라고 묻지 않았다면 더 한참 넋이 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어. 친구들이냐고 묻는 말에 옆에 있던 야마모토랑 후쿠나가, 이누오카가 보이더라고. 다행히 그날은 다들 경기 끝나고 회의 후에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너희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어. 게다가 다들 한 달씩이나 경기를 보러 와주다니 진짜 잊지 못할 서프라이즈야. 중간에 켄마 네 생일도 다 같이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중간에 애들이 돌아가면서 한 명씩 왔다가 간 것도 정말 고맙다고 전해줘. 따로 전화하긴 할거지만 그래도.
그리고 애들이 돌아가고도 세 달이나 더 폴란드에 머물러주다니. 시즌이라 많이 못 챙겨줘서 미안했지만, 덕분에 더 힘이 났어. 고마워, 켄마. 첨엔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 나 때문에 휴학한 줄 알고 엄청나게 놀랐어. 다행히 네가 따로 할 일이 있어서 휴학을 한 김에 온 거였지만…….
아직 시즌은 한참 더 남았지만, 덕분에 지치지 않고 폴란드의 첫 시즌을 잘 치를 수 있을 거 같아. 너와 같이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상상만 했던 것들을 실제로 해볼 수 있던 것도, 짬짬이 이곳저곳을 놀러 다닌 것도, 내 생일을 챙겨준 것도 조금은 꿈 같지만, 너무 행복했어. 특히, 할머니께 배웠다는 꽁치구이. 진짜 맛있었고, 감동이었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지……, 나도 열심히 요리연습해서 다음에 네게 맛있는 거 해주도록 할게. 이번 시즌이 끝나고 일본에 가면 그땐 좀 더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자.
지금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편지가 조금 짧지만 네가 일본에 도착하면 전화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지금 일본은 춥겠지? 2월이라 좀 추위가 가셨을까? 목도리 두르고 다니는 거 잊지 말고 지내. 정말 고맙고, 사랑해, 켄마.
20xx. 02. 03.
네가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며, 쿠로.
#후기
안녕하세요! 유리입니다! 드디어 마감이에요!
맨날 쿠로켄 써야지~ 생각만하고 실행하지 않는 중에 쿠로켄 합작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고, 때마침 점프에 쿠로오가 나오고, 완결이 나면서 이건 쿠로켄 합작에 참여하라는 신의 계시(?)라는 생각에 합작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여러가지 개인사들 때문에 위기가 몇 번 있었지만 어찌어찌 이렇게 합작을 무사히 제출했네요.
제가 정한 꽃인 개미취는 켄마의 일본 탄생화에요! 연보라색을 예쁜 꽃인데 마침 꽃말이 생각했던 소재 몇 개와 어울리는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 분께서 <왕복서간 -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이라는 연극을 하셔서 보러갔는데 극이 굉장히 재밌어서 원작책도 사게 되었다가 먼 곳에서 편지를 주고 받는 쿠로켄을 자동적으로 떠올리면서 쓰게 되었는데요. 머리 속에 생각해 둔지는 꽤 됐는데도 언젠가 쓰겠지, 하고 미뤄두기만 하다가 이렇게 쓸 기회가 생겨서 주최님께 감사할 다름입니다. 일상물을 너무 쓰고 싶은데 저는 일상물에는 재주가 없다는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편지를 주고 받는 쿠로켄을 상상하면서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간에 일본의 학기 제도와 폴란드 플러스리가의 시즌이 맞지 않아서 머리를 열심히 쥐어뜯긴 했지만 어떻게든 쿠로오를 세계적인 배구선수로 만들겠다는 뒤틀린 욕망으로 겨우겨우 끼워 맞춰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켄마는 이성적인 부분도 크지만 아직 어리고, 젊고, 그리고 의외로 감상적인 부분도 큰 거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에 편지를 먼저 제안하는 건 켄마로 정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켄마가 먼저 제안을 해야 좀더 켄마가 편지를 열심히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좀 작용했고요. 그리고 리에프를 잘 부탁한다는 네코마타 감독님의 말에 그런 표정을 짓는 켄마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엄청나게 친화력이 장난 아닌 히나타가 제일 큰 몫을 했지만 히나타와 친해진 과정을 생각해보면 생각보다는 낯가림이 심하다는 건 그냥 겉보기에 그런게 아닐까? 게다가 옆집에 살고, 십년이 넘게 자주 마주쳤을테니 쿠로오의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어느정도 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도 넣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한국인이라 켄마를 열심히 먹이려는 할머니가 등장하게 되었어요. 쿠로오가 덕분에 아주 행복해졌겠죠. 홀홀홀.
그리고 이번 글을 쓰면서 느낀 건 서간문 형식은 좀 더 책을 많이 읽고 쓰자는 다짐이었습니다. 서간문 형식의 글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쓰는 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저는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다시 느꼈습니다.
주절주절 쓰다보니 아무 말이 엄청 길어졌는데요. 다시 한 번 합작을 주최해주신 주최님과 다른 참여자 분들 그리고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면서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쿠로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