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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첫사랑, 우정, 젊은 날의 추억

라일락 꽃향기를 맡으며

by. 지금(@zi_g_old)

 

그와의 우정은 내 젊은 날의 추억이었고, 첫사랑이었다.

 

 

 

그를 처음 다시 만난 건 내가 자주 지나다니던 골목의 한 꽃집에서였다. 작은 체구에 노랗게 물들여진 부분은 너무 길어 잘라냈는지 지금은 검게 내려온 머리카락을 살짝 묶어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덕분의 나는 그가 과거의 나랑 함께 했던 ‘코즈메 켄마’라는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연락이 끊어진 지는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 서로 원하는 것이 다르고 목표가 달라도 우리는 계속 함께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나의 연습이 바빠지고 강도가 높아질수록 나는 켄마의 연락을 받을 시간조차 사라져갔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아도 켄마가 연락을 해줄 거라 믿었던 나는 켄마와의 연락을 방치했고 우리를 이어주는 실은 그대로 끊어져 버렸다.

 

 

“켄마?”

 

 

나를 알아봐 줄까, 혹여나 나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켄마는 답지 않게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놀란 감정을 숨길 수 없는 것은 여전했다. 눈을 이리저리 한참을 굴리더니 이내 켄마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쿠로”

 

 

켄마의 첫 마디에 긴장하고 있던 몸이 풀리고 미소를 지었다. 나를 기억해 주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나를 모르는 척하지 않았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다듬던 꽃들을 내려두고 내 곁으로 걸어왔다.

 

 

“잘 지냈어?”

“나야 뭐, 원하던 꿈을 이루고 지내고 있어. 켄마도 좋아 보이네. 잘 지냈어?”

“응, 원하던 꿈도 이루고 있고, 그럭저럭 지냈어.”

 

 

밖에 놓인 꽃들을 보며 켄마는 미소를 지었다. 나랑 있을 때도 이렇게 예쁜 웃음은 잘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거 같아서 안심이 됐다. 혹여나 바뀌었을 번호를 물어보았다. 다행이게도 켄마는 연락이 끊긴 시점부터 번호를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전에는 켄마에게 스토커가 여럿 따라다녀 1년에 한 번씩 바꾸었는데 번호를 몇 년이 지나도 바꾸지 않은 걸 보니 요즘은 그런 사람이 없는 거 같아 보였다.

“이따 연락할게”

“응, 이따 봐.”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뒤를 돌아서서 꽃들 사이를 걸어가는 켄마를 보니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배구하면서 보여줬던 반짝임을 꽃들을 위해 빛내고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그날 저녁 켄마집과 가까운 카페에서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다.

 

“일은 잘 돼?”

“뭐, 그럭저럭. 쿠로는?”

“나야 뭐, 국대되고 정신없이 살았지.”

“쿠로가 나온 인터뷰 많이 봤어. 좋아보여서 다행이야.”

 

놀랐다. 켄마가 내가 나오는 인터뷰를 볼 줄 몰랐으니까. 평소에 TV에 관심도 없었는데 내 인터뷰를 많이 봤다는 말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인터뷰에 가끔 켄마의 이야기도 하곤 했다. 혹여나 그가 내 이야기를 듣고 날 찾아와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것저것 이야기하며 이루어진 켄마와의 만남은 이렇게 끝이 났다.

 

켄마와 만난 이후로 연락을 다시 시작했다. 물론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했던 사람은 나다. 처음에는 말주변이 없는 켄마를 상대로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조금 힘들었는데 이것도 초중고의 시절에 많이 해봤기 때문인지 금방 적응이 되어 예전처럼 켄마를 대할 수 있었다. 켄마는 그때와 달리 날 귀찮아하지 않고 생각보다 잘 받아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두 번째의 만남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말이 두 번째 만남이지 사실 예전과 다름없는 우리가 되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서로의 집이 조금 멀어진 것과 본가가 아닌 자취방을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켄마의 자취방은 전과 다르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한쪽의 책장은 게임팩으로 가득 차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켄마 요즘은 무슨 게임 해?”

“글쎄.. 예전에 했던 것들 다시 해보는 중이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향수병이 생기거든.”

 

켄마는 게임팩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 시절의 우리를 그리워하는 거처럼. 예전부터 궁금했다. 켄마가 왜 배구의 꿈을 포기하고 플로리스트로 전향하게 되었는지.

 

“켄마, 근데 갑자기 왜 배구를 그만둔 거야? 원래 꿈이 플로리스트였던가?”

“…나도 쿠로랑 같이 배구의 꿈을 꿨어. 쿠로랑 함께 코트에 계속 서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내 헛된 꿈이었지.. 쿠로도 알다시피, 우리 부모님이 반대를 심하게 했어. 고등학교 때부터 생기기 시작한 스토커 때문에 내가 유명해지면 더 심해진다고 생각했나 봐. 그래서 결국 예전부터 부모님께서 원하시던 플로리스트의 진로를 가지게 됐어. 근데 후회는 안 해. 이렇게 다시 쿠로와 함께 이야기하는 게 일상이 되었고, 쿠로 곁에서 코트에 서있는 널 볼 수 있으니까.”

 

알고 있었다. 켄마의 부모님께서는 켄마가 취미로 배구를 즐기기를 원하셨지 꿈을 배구로 가지는 것은 원치 않으셨다. 켄마가 나와 함께 코트를 서는 걸 즐거워하는 거만큼 나도 켄마와 함께 코트에 서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켄마의 부모님이 이해가 갔기에 배구를 같이 하자고 강요할 수 없었다. 켄마의 부모님은 꽃을 굉장히 좋아하셨다. 그런 덕에 켄마도 꽃들 사이에서 자라났고 부모님께서는 켄마가 꽃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사실 켄마가 처음 배구부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그를 말리곤 하셨다. 그래도 켄마가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전해졌는지 켄마는 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의 진로를 결정할 땐 켄마의 간절한 마음을 모른 척하셨다. 결국 켄마는 공 대신 꽃을 만질 수밖에 없었다.

 

“꽃을 만지는 걸로 만족하는 거야?”

“응, 꽃은 공이랑 비슷한 거 같아. 세심하고 정교하게 만져야만 공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잖아. 꽃도 마찬가지야. 그러지 않으면 금방 시들어버릴 거야. 공과 다른 점이 있다면 꽃은 어떤 꽃이냐에 따라 꽃말이 다르다는 거. 또 전해주는 의도에 따라 의미도 달라진다는 거. 너무 흥미롭지 않아?”

 

켄마가 이 정도로 꽃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배구를 권할 구실을 만들어 낼 수 없었다. 그저 켄마가 웃으며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켄마 그러고 보니 전화번호 안 바꿨던데 스토커,, 일은 잘 해결된 거야?”

“…아니, 스토커 아직도 날 쫓아다니고 있어. 어디서 어떻게 날 보는지 모르겠지만 매일같이 날 괴롭혀.”

“뭐?! 그럼 번호를 안 바꾸고 뭐 한 거야??”

“쿠로가 언젠가 나에게 다시 연락 올 수도 있는데 어떻게 바꾸겠어. 번호를 바꾸면 쿠로랑 연락을 할 수 없게 되잖아. 쿠로는 유명인이니까 번호를 자주 바꿀 거라 예상했어. 그럼 난 쿠로에게 연락할 수 없으니까.. 연락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마저 없애고 싶지 않았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나만 그를 생각할 줄 알았다. 아니, 사실 나보다 그가 훨씬 더 나를 생각해 주고 배려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쿠로가 국대 되면서 터지는 스캔들 많이 봤어. 항상 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었는데 들을 수 있을까?”

“다 루머야.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렇구나, 그 사람과 꼭 잘 됐으면 좋겠다.”

 

켄마의 씁쓸한 표정을 보니 내가 말실수를 한듯싶었다. 말을 하려던 순간 켄마는 입을 열었다.

“그건…!”

“쿠로, 이건 튤립이야. 내가 아까 말했던 거 생각나? 꽃은 각각의 꽃말이 있지만 주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 꽃말도 같이 바뀐다는 거. 그걸 꼭 기억해 주면서 이 꽃을 받아줬으면 좋겠어.”

 

켄마가 건넨 튤립엔 향긋함과 켄마의 체향이 조금 담겨 있었다. 켄마와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튤립을 화병에 담아두곤 튤립의 꽃말을 검색했다. 튤립. 사랑의 고백, 매혹, 영원한 애정. 꽃말을 보자마자 나는 꽃집을 향해 달려갔다.

 

“저희 지금 마감시간인데..”

“죄송해요. 제가 진짜 급해서 그런데 꽃 한송이만 포장해주실 수 있나요?”

“알겠습니다. 어떤 꽃으로 해드릴까요?”

“라일락이요.”

 

라일락. 켄마의 꽃을 받고 어떤 꽃을 선물해 줄지 고민이 많았다. 많은 꽃들 중 우리의 사이를 표현할 수 있는 꽃을 찾길 바랐다. 꽃을 찾던 중 발견한 라일락은 첫사랑, 우정, 젊은 날의 추억이라는 꽃말을 담고 있었다. 켄마라면 분명 라일락의 꽃말을 알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감춰왔던 내 마음을 그에게 전해주기 위하여 마감을 하고 있는 켄마의 가게로 향했다.

 

“켄마!!”

 

 

켄마는 날 보자마자 놀랐다. 집에 갔던 내가 그의 눈앞에서 꽃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적지 않게 당황한 거 같았다.

 

“쿠로 뭐야..?”

“켄마, 아까 켄마가 나한테 말해준 거 기억해?”

“꽃을 주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서 꽃말은 바뀔 수 있다는 거?”

“응, 켄마는 분명 내가 주는 꽃의 꽃말도 알 거라고 믿어.”

 

그러고는 수줍게 꽃을 내밀었다. 켄마는 내가 건넨 꽃을 받아들곤 볼을 붉히며 말을 이어갔다.

 

“이거, 라일락이네.”

“응, 무슨 뜻인지 알 거 같아?”

“첫사랑, 우정, 젊은 날의 추억.. 아니야?”

“맞아. 꽃말을 처음 봤을 때 우리 이야기를 그려놓은 꽃 같아서. 켄마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어.”

“쿠로는 아직도 내가 첫사랑이야?”

“응, 켄마가 준 꽃말의 대답이야.”

 

그렇게 켄마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고마워 쿠로.”

“늦게 네 마음을 찾아와서 미안해. 용기가 나지 않았어. 그래도 널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어. 이건 정말 진심이야. 너는 내 첫사랑이자 젊은 날의 우정에 대한 추억인걸.”

“나도, 하루도 쿠로를 잊은 적이 없어. 나에게 배구를 가르쳐준 순간부터 사랑을 알려주고 쿠로를 사랑한 그 순간까지 말이야.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테츠로.”

 

벚꽃이 흩날리는 우리의 첫 만남, 그와의 우정은 내 젊은 날의 추억이었고, 첫사랑이었다.

#후기

마지막 합작을 했던게 2~3년 전인 거 같은데 오랜만에 합작에 참여했네요! 합작 신청할까 고민하다 꽃을 찾았는데 라일락에 대한 꽃말을 보자마자 이건 무조건 쿠로켄이잖아!!라는 생각을 하면서 바로 신청해버렸어요! 라일락은 사랑과 우정을 한곳에 담아놓은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합작은 제가 풀던 썰을 모티브로 글을 적게 됐어요 원래 썰에서는 켄마가 유치원 교사로 나오는데 꽃말 주제에는 플로리스트가 잘 어울릴 거 같기도 했고 꽃밭에서 자란 켄마의 아름다운 모습에 두 번 반하는 쿠로오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설정을 바꾸게 됐어요 ㅎㅎ! 합작을 조금 급하게 마무리 했지만 최애 커플 합작인만큼 정말 즐겁고 재밌게 마감했습니다! 합작 열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시바님 ♡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또 한 번 열렸으면 좋겠어요! 합작 신청하신 분들도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

 © 2020.08.19 Kuroken Flower Collaboration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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