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망초- 나를 잊지 말아요.
한여름 밤의 꿈
by. 이큐(@ha2kyuu_2Q)
“그러니까...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벽에 머리를 박기도 해보고 이게 현실인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 볼에 붉은 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뺨을 쳐보기도 하였다. 결국 그러한 행동들은 지금 내 눈앞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남자가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나는 그저 비 오는 날 집 앞에서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고양이를 왠지 모를 끌림으로 인해 집 안으로 데려왔을 뿐이었다. 솔직히 처음 2주는 정말 행복했다. 길고양이치고 고양이는 나를 잘 따라줬고, 나는 그만큼 사랑을 퍼부어주었다. 모든 것을 연마(研磨)하라는 뜻으로 켄마(研磨)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을 정도니까. 이름은 애정의 증명이라던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자. 내 눈앞에는 자신이 켄마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나를 쳐다보며 앉아있고, 실제로 켄마(고양이)는 사라져있다. 그가 켄마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는-
“쿠로 어제 팬티 새하얀 색..”
..미치겠다. 우리 집에 도둑이 든 적은 없었는데. 특히 남에게 내 팬티색을 알려준 기억은 더욱. 믿을 수밖에 없는 증거를 앞에 두고 나는 현실성 없는 사건에 혼란 속으로 몸을 담근다.
/
확실히 그는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사람의 말은 유창했으나 어색함이 묻어있었고, 사람들을 오래 지켜보아 그 행동을 ‘따라 한다’는 느낌이었다.
“켄마, 옷 거꾸로 입었어. 그리고 앞뒤도 틀렸어.”
“다시 입기 귀찮아….”
“그러고 밖에 나가면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한다구. 이리 와.”
옷을 제대로 입는 법조차 몰랐으며, 다른 사람들에 비해 타인이 도와주는 손길이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전부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가끔 내가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조용히 곁에 다가와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 또한 사람답다고 할 수는 없었다. 사람 탈을 쓴 고양이 같다고 해야 할까.
“쿠로, 어디 열나거나 그러진 않아? 어디가 아프다거나….”
“오야? 켄마 지금 쿠로오씨 걱정해 주는 거야?”
“에, 딱히….”
귀여운 구석은 있었다. 내 주변을 맴돌면서 나를 걱정하다가도 내가 감동 받아 눈을 반짝이면 금세 고개를 돌리며 아니라고 부정하는 모습은 꽤 귀여웠다. 머리를 쓰다듬으면 또 조용히 손길을 받는 모습을 보면 왠지 기분이-..
아니 이게 뭐라고 기분이 묘해지지? 상대는 고양이인데. 요즘 더위를 먹었나….
/
아니. 더위를 먹었다기엔 너무 내가 맨정신인데. 전처럼 그를 바라볼 수 없는게... 이건 마치..
“쿠로.”
사랑에 빠진 것 같잖아. 멍하니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나를 그저 바라봤다. 아무런 의심도 안 가지고, 나를 피하지 않고, 그 위치에 앉아있었다.
“쿠로?”
“…아.”
졸음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는 정신을 차렸다. 나 자신이 멍하니 하려 했던 짓을 떠올리고는 풀썩, 주저 앉았다. 내가 대체 무슨 정신으로 애한테….
“쿠로.”
“응?”
“방금 쿠로가 하려고 했던 거….”
“아. 그,그게 그러니까~..”
켄마가 나를 쳐다본다. 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돌리고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냥~... 별거 아니었어. 아하, 하.. 내가 생각해도 참 못난 모습이었다. 참아, 쿠로오 테츠로. 미쳤어? 마음 같아서는 머리카락을 뜯고 이불킥이나 하고 싶었다. 그러면 진짜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지….
“그거. 그냥 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데.”
응?
“키스…. 해도 괜찮다고.”
으응???????????????
“..나도 알건 다 알아. 인간들이 하는 행위 같은 것도 그렇고. 교ㅁ,”
“케ㅔ케켄마!!! 아, 아,알겠으니까 그, 그만~!!!!!”
“그치만 나도 다 아는데…. 인간들이 그런 거로 기뻐한다는 것도….”
“그런 거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누누누구지? 야쿠?야쿠인가?아니 그 녀석은 그럴 녀석이 아닌데-... 그럼, 아니면, 또-..
“관찰하면서 배웠어.”
“관찰?”
“응. 인간들을 자주 관찰하고 있었거든. 재미있는 생물들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켄마를 볼 때면 그와 내가 다른 종족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음? 그런데 잠시만. 그 행위의 뜻을 아는 거라면….
“나도 좋아해, 쿠로.”
/
쿠로오 테츠로. 건강한 일본의 한 청년... 인 나는 이렇게 기묘한 연애를 시작했다. 고양이였지만 현재는 인간인 켄마와는 정말 행복하게 잘 연애하고 있다. 어딜 나갈 때도 항상 그와 함께했다. 내가 어딜 갈 때마다 함께한다 해서 귀찮은 것을 넘어 의아했지만, 혼자 집에 있는 것이 외로워서 그런거겠지, 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켄마는 가끔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쿠로, 만약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말이야….”
“응? 켄마가 왜 사라져?”
“그냥, 만약에…. 예시... 로.”
요리조리 움직이는 그의 눈동자가 굉장히 수상했지만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에 이번 한 번은 넘어가주기로 했었다.
“사라진다면?”
“내가 사라진다면 날 찾으려는 고생 같은 건 하지 말고 날 그냥 보내줘.”
“그치만 켄마가 나쁜 사람한테 잡혀간 거면 어떡해?”
“작은 선물을 하나 두고 갈거야. ..그걸로 구분해줘.”
그러니까, 네가 왜 사라지는데? 어디로 가는 거야? 그에게 끝없는 질문 중 하나를 집어 물어보려했으나 그는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는 것으로 내게 더 묻지 말아 달라는 의사를 표현했다. 나는 그의 그 표정을 보고도 질문을 할 뻔뻔함 따윈 갖고 있지 않았었다.
“미안해, 쿠로.”
그때 네게 물어봤어야했는데.
/
그 날따라 꿈이 굉장히 모호했던 것 같다. 무슨 꿈을 꾸긴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애매한 기상. 하루의 시작이 무척 찝찝했었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며 네 방으로 찾아갔다. 항상 나 몰래 방에 들어와서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잠에 들었던 너였는데. 그 날은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며.
“우왓.”
그의 방에 들어서자 거센 바람이 나를 반겼다. 창문은 열려 있고. 혹시…?
“..켄마?”
방에 그가 없었다. 혹시나 고양이로 돌아간 건가 싶어 침대 밑, 옷장 등 여러 곳을 찾아보았지만 그는 없었다. 켄마? 켄마~ 그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그를 찾았다. 손이 떨려 왔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이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켄마. 내 일상 속에 이렇게 깊게 파고들었으면서 이렇게 사라져버리면 난, 난….
강한 바람이 창문에서 들어왔다. 켄마가 사람이 되었을 때 느낀 바람과 같은 강도였다.
‘어리석구나. 이런 녀석이 뭐가 좋다고 너는….’
묵직한 음성. 사람을 사로잡는 음성이었다. 그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문 앞에는, 물망초가 놓여 있었다. 물망초? 물망초는 분명….
‘켄마. 물망초의 꽃말이 뭔지 알아?’
‘물망초의 꽃말? 몰라... 뭔데?’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이게 물망초의 꽃말이래~ 뭔가 로맨틱하지 않아?’
‘응…. 로맨틱하네.’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따스한 바람이 나를 감싸 안았다. 아까 전의 그 묵직한 음성이 실어 온 강한 바람과는 다른 따스하고, 포근한 산들바람이었다.
“켄마….”
그냥 보내달라고 했던 이유는 잘 모르겠어, 켄마. 미리 언질이라도 해줬으면... 그랬다면 내가 널 더 쉽게 보내려 마음의 준비라도 했었을 텐데. 내게 따스한 온기를 나눠줘서 고마워. 한여름 밤의 꿈만 같던 너와의 순간이었다. 정말 길고 긴, 그런 꿈.
+ K의 경우.
신에게 사랑 받는 한 영혼이 있었다. 신은 그 영혼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었고, 그 영혼은 모든 악귀들에게는 강력한 힘을 주는 매력적인 영혼이었고, 신을 따르는 천사들에게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신이 사랑하는 존재로서 보호해야 하며 사랑을 나누어주어야 하는 존재였다.
그 영혼의 소유자는 나였다. 인간들로 인해 골머리를 썩이기기고 있는 신은 바쁜 몸이었기에 내게 복잡하고 시간이 드는 절차를 밟아가며 이름을 하사할 시간이 없었고, 그 신을 따르는 천사들은 감히 내게 이름을 바치지 못하였다. 그로 인해 나는 신의 공간에서는 무명(無名)이라 불렸다.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 존재, 무명.
신의 손길이 없는 곳에서 나는 천천히 식어갔다. 따스함을 잃어갔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그 사랑은 너무나도 투명하여, 그저 영혼일 뿐인 나에게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그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은 인간들을 관찰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를 만나게 된 것도 내가 인간이라는 생명체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호기심으로 인해 인간의 세상에 가본 것이 그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몰래 육체를 가지고, 그들의 세상에 스며들었다. 고양이라는 생명체의 몸은 자유롭게 인간들의 세상을 거닐기엔 최적의 몸이었다. 그러나 그 몸은 너무나도 작았고, 나의 지식은 너무나도 얕아서-..
“위험해!!!”
..저게 바로 ‘'차’라는 건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기까지 일을 마친 신이 내게 달려오는 시간만큼 걸렸다... 대충 40초 정도 걸렸다는 뜻이다. 나는 현재 한 남자의 품속에 있고, 이 남자는 숨이 차 보이며, ‘차’라는 물체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감히 나를 안다니, 이 남자의 잘난 얼굴이나 볼ㄲ
“괜찮아? 다친 곳은 없... 겠지?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 날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웠다.
그 날의 나에게는 그저 ‘간지러움’이라는 느낌이 컸지만.
/
무사히 신의 공간으로 돌아오고, 나는 그 인간 남자를 더 관찰했다. 그는 그저 집 안에서 컴퓨터라는 이름의 물체만 두들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직업은 모르겠고, 나이 든 인간 둘과 함께 지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그 둘이 이젠 살아있지 않기 때문. 그의 주변에 서성거리는 그 둘의 영혼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를 걱정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표정에서 그들이 그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를 지켜보면 볼수록, 나는 그로인한 묘한 간지러움이 커질 뿐이었다. 이 간지러움은 뭐지? 몽글몽글한 기분. 신이 내게 찾아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나는 그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야, 뭐를 그리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인간 세상은 즐거웠니? 이상한 것을 끌고 왔구나.’
상대는 신이었다. 감히 내가 비밀을 품을 수도 없는 존재였다. 시선을 피하며 변명거리만을 생각했다. 그런 나를 보며 그는 내 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너무나도 밝은 빛 아래에 죄악을 들켜 얼굴이 붉어졌다.
‘변명이나 생각하고 있는거니...? 기다릴테니 천천히 생각하렴. 변명일지라도 네 맑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나는 용서할 수 있단다.’
‘죄송해요. 몰래 인간 세상에 내려갔었어요.’
‘그래? 그럼 네가 달고 온 그것은 이만 버리지 그래?’
그는 소유욕이 강한 자였다. 생물체에게 자비롭고 은혜롭지만 자신을 떠난 이들에게는 무거운 죄악을 내리는 그런 자였다. 그런 신이 가장 사랑하는 내가, 감히 그 말고 다른 자에게 품은 감정과 생각을 그가 반길 리가 없었다. 아아, 그의 사랑은 내겐 하나의 불행이었다.
‘감정이라기엔 그냥 호기심... 이랑 간지러움 뿐인걸요.’
기어들어 가는 내 목소리.
‘호기심? 간지러움? 네가 달고 온 그건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거라구, 내 예쁜 아가야.’
그의 목소리에서 묵직함이 드러났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버리고 싶지 않아요. 신께서는 항상 저를 사랑해주셨지만 제게 이름을 지어주시지도, 제게 자유를 주시지도 않으셨잖아요.’
처음으로 내가 그의 앞에서 낸 용기.
‘그 자는 네게 자유를 줄 것 같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새로움을 주었어요.
‘정말…. 바보 같은 그 모습이 사랑스러운 내 사랑아, 그저 내 곁에서는 아무런 배고픔도, 갈증도, 불안감도 느끼지 않아도 된단다. 위험이 전부 사라진 공간 속에서 넌 그저 존재하기만 하면 돼.’
‘그 완벽함이 저에게 괴로움을 느끼게 했어요. 존재하는 것이 제게 허무함을 느끼게 했어요. 위험이 사라진 공간 속에서 저는 허기를 배웠어요.’
신의 빛은 침묵했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천사가 우리에게 달콤한 별 하나를 가져다주었을 때, 그는 말문을 열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네가 가진 감정이 무엇인지, 위험요소가 사라진 공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배우고 오렴.’
그는 내 이마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래, 네게는 이 모습이 편하겠구나…. 그의 이 말을 끝으로 나는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
/
비가 오는 오후였다. 나는 고양이라는 생물체가 되어 한 상자 속에 들어있었다. 축축한 느낌이 기분 나빴다. 몸이 으슬으슬했다. 그가 어디 살았더라. 이곳은 어디지? 상자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는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비 때문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그 빗속에서 한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
“어? 고양이?”
그다, 나를 살려준 인간. 반가워서 그에게 다가가려했으나 오랜 시간 상자 속에 앉아있었던 탓인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풀썩, 쓰러지는 나를 보고 그는 황급히 달려와 자신의 품속에 나를 품었다. 아, 이 온기. 이 온기가 그리웠다.
“누가 우리 집 앞에 고양이를…. 이렇게 작고 귀여운….”
그는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이내 결심한듯 나를 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의 이 인간의 집 앞이었구나. 그는 집에 들어와 나를 씻겨주고, 내게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그런지 처음 느껴보는 공복이었다. 허겁지겁 먹는 나를 바라보며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앞으로 내 집에서 살게 될 건데…. 괜찮아?”
그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약간의 초조함과 걱정스러움이 그의 눈 속을 자리했다. 먀아옹. 그래, 라는 대답을 한 건데 이 종족의 울음소리는 왜 이래? 어색한 느낌에 멈칫했다.
“왜그래? 어디 아파?”
그가 내게 손을 내민다. 나는 그 손에 기꺼이 내 볼을 부볐다.
/
나는 신에게 사랑 받는 영혼이었다. 그로 인해 악귀들이 내게 굉장히 많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내가 혼자 있을 때 신은 몰래 내게 말을 걸었다. 그는 바람으로 자신의 음성을 내게 옮겼다.
‘네게 처음 인간세상으로 갔을 때의 영혼을 제외한 9개의 영혼을 선물하마. 그 영혼을 전부 네가 써버리면, 그때 나는 널 이곳으로 다시 데려올 것이란다.’
그가 내게 사랑으로 가득 담아 베푼 자비였다. 악귀들을 무시하고 처리하는 것은 쉬웠다. 자신이 나를 결코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그들은 나에게서 신경을 거두고 인간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나의 유일한 허점이었다.
그를 위해 나는 내 영혼을 소모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같은 크기로 싸울 수 있었다면 정말 소모하는 속도가 그나마 느렸을 텐데. 이렇게 중얼거리자 또다시 신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세 번째 목숨을 썼을 때였다.
‘영혼을 소비하는 속도가 빠르더구나. 저 인간을 지키려 그런 거니?’
‘네.’
‘더 큰 모습을 원한다고 했지.’
‘…네. 그와 같은 모습이요.’
‘…그래, 알겠다. 그렇게 하려무나. 그렇지만 네가 영혼을 소비하면 난 바로 너를 데려올 거야.’
그는 나의 안전 외에는 가차 없었다.
그러고 나는 신의 사랑으로 인간의 모습을 얻었다. 처음 인간이 되었을 때, 인간은 날 보고 굉장히 놀랐었다. 고양이가 인간으로 변하는 경우는 없었을 테니까. 그는 나를 의심했고, 그 상황 속에서 내가 그의 신뢰를 위해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하나.
“쿠로 어제 팬티 새하얀 색..”
그의 이름을 처음 말한 날, 나는 동시에 그의 속옷 색을 처음 말해본 날이기도 했다. 간지러운 느낌.
/
나는 인간이 되고 항상 쿠로와 함께했다. 덜 위험한 악귀는 내가 직접 몰래 해치웠고, 위험한 녀석은 피해가며 쿠로를 지켰다. 물론 그는 항상 따라다니는 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몰래 따라다녔었다.
내 감정의 정의를 알게 된 것은 정말 갑작스러웠다. 나는 그저 평소대로 행동했고, 그 또한 평소와 다르지 않았을 것... 이었다. 그가 나를 쳐다보기에 나는 평소처럼 무슨 일이 있냐는 듯이 그의 이름을 불렀었다.
“쿠로,”
내 말에 그는 홀린 듯이 내게 다가왔다. 얼굴이 점점 나와 가까워졌다. 이게 뭐지…. 이건….
“쿠로?”
“…아.”
그는 깜짝 놀라더니 풀썩, 주저앉는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쿠로가 지금 나한테 하려 했던 게….
“쿠로.”
““쿠로.”
“응?”
“방금 쿠로가 하려고 했던 거….”
“아. 그, 그게 그러니까~..”
그가 고개를 돌린다. 얼굴이 살짝 빨개진 거 같은데….
“그거. 그냥 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데.”
그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본다.
“키스…. 해도 괜찮다고.”
놀란 눈이 퍽 귀여웠다. 살며시 웃음을 지었다. 조금 더 놀려볼까.
“..나도 알건 다 알아. 인간들이 하는 행위 같은 것도 그렇고. 교ㅁ,”
“케ㅔ케켄마!!! 아, 아,알겠으니까 그, 그만~!!!!!”
“그치만 나도 다 아는데…. 인간들이 그런 거로 기뻐한다는 것도….”
“그런 거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어디서? 그야 나는….
“관찰하면서 배웠어.”
“관찰?”
“응. 인간들을 자주 관찰하고 있었거든. 재미있는 생물들이라서.”
말하다 보니 깨달았다. 그에게서 내가 배운 감정은 간지러움 같은 것이 아닌,
“나도 좋아해, 쿠로.”
/
그 후부터는 그를 따라다니는 것이 편해졌다. 그의 옆에 있어도 그가 뭐라 안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영혼이 줄어드는 것은 여전했다. 내가 커져서 전보다는 비교적 느리게 소모했지만, 강한 악귀들에게는 그냥 내 영혼을 버리는 것이 더 안전했기에.
만약 내가 널 좋아하지 않고 그냥 저 위에 있었다면 네가 이렇게 위험할 일은 없었겠지. 그치만 나는 내가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이름을 얻고, 감정을 얻고, 내가 얻은 것이 굉장히 많았기에.
신은 종종 날 찾아왔다. 나는 어느 날 신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상해요. 절 사랑한다면서 이렇게 자기 자신이 상처 받는 행동을 하잖아요.”
신은 내게 씁쓸하게 대답했었다.
‘그야 내가 널 사랑해서야.’
“자신이 상처 받아도?”
‘사랑은 그만큼 위대하기 때문이지.’
/
나는 자주 그에게 말했다. 내가 어느 날 사라지면 그냥 보내달라고. 내 영혼이 전부 없어질 때를 대비해서. 그는 내게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에게 미안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미안해, 쿠로. 네가 받을 괴로움에 나는 그저 이런 키스 하나만을 줄 수밖에 없어.
사랑은 완벽하지도, 평생 행복하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위대하고 아름답다. 누군가가 이 말을 했었다. 누구였더라. 김이…. 김익규..? 잘 모르겠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건 내가 최근 들어 그 뜻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사랑은 완벽하지 못해. 그래서 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안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겠지.
너 또한 나와의 사랑을 아름답게 가지고 있어 주려나.
/
마지막 날이 왔다. 내 영혼은 남지 않았다. 죽음은 내게 낯설었다. 한 번도 겪지 못한 경험이었다. 두려웠다. 그치만 그런 내 죽음을 눈앞에서 겪어 괴로워할 쿠로가 더 걱정되었다. 쿠로, 네가 집에서 일을 하는 이유도,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이유도 너보다 먼저 떠난 늙은 인간들 때문이잖아. 내가 떠날 때는 그냥, 하나의 추억으로 남겨서 덜 괴로웠으면 좋겠어. 넌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치만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신이 나를 찾아왔다. 강한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그의 음성이 바람을 타고 왔다.
‘정말 이대로 가도 괜찮겠니?’
“됐어요…. 여기서 무언가를 더 하면 슬퍼질 뿐인걸.”
‘그래? 알겠다.’
“…아. 그냥, 물망초 꽃 하나만 제 방에 놔줘요.”
쿠로, 내 마무리는 로맨틱했을까?
그에게 따스한 바람으로 입을 맞추곤 나는 ‘무명’으로 사라졌다.
물망초 꽃말,
‘나를 잊지 말아주세요.’
#후기
처음 해보는 합작이라 굉장히 긴장했는데, 긴장 보단 이젠 지친 몸과 정신이 걱정이 되네요^^.. 제가 트윗으로 '쿠로켄 합작 열려야만.'이라는 트윗을 올렸었는데 그 트윗으로 인해 이렇게 큰 규모의 합작이 열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아마 제 트친이자 주최자님이신 분도 놀라셨을걸요.. (내가 쏘아올린 큰 합작)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다행입니다. 제 글 속에 제가 머릿속으로 구상했던 자잘한 설정들을 전부 풀어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고 해야할까요...ㅋㅋㅋ 시간이 얼마 없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쿠로오의 팬티 색의 이유, 쿠로오의 생활에 대해 약간 언급했던 이유 등등, 후기로 풀어낼 수 있다면 풀고 싶었는데 다 풀기엔 후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네요ㅎㅎ 그냥 너무 궁금하신 분은 제 페잉에 질문 남겨주시면 제 본계에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속의 설정이나 상황, 인물의 심정 등 궁금하신 점은 편하게 질문주세요 :)쿠로켄 좋아하시는 분들 모두 항상 건강하시고 일상에 행복함만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합작 열어주신 주최자님과 참여하신 모든 분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마감 독촉 감사했어요 덕분에 제가 새벽에 마감을 다 하게 되네요. 게으른 저를 움직이게 해주셔서 그저 감사할따름.. 다음 합작부터는 소비러로 참여하겠습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행복한 하루되세요! -쿠로켄 사랑 동호회 회원 이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