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일락- 젊은 날의 추억
인어가 내리는 밤
by. Hashi(@ha7_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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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살면서 본 모든 것들 중 가장 아름다웠고, 앞으로 내가 볼 것들 중에서 가장 매혹적이었다. 나를 홀려도 좋으니 또 다시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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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녀올게요.”
“쿠로오, 혹시라도 거기 절벽 근처로는 가까이 가지 마라. 알겠지? 몇 달전에도 관광객 하나가 거기서 쓰러졌댄다. 응?”
“네. 걱정마세요.”
쿠로오는 걱정하는 목소리의 어머니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집을 나섰다. 그는 벌써 서른을 훌쩍 넘겼는데, 어머니의 눈에는 아직도 어린 아이로 보이는 게 분명했다.
거의 2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었다. 쿠로오의 고향은 인적이 드문 작은 섬마을이었는데, 그가 어릴 적 만해도 일 년에 아이가 한 둘은 태어났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사람들은 하나 둘 작은 마을을 떠나갔고 마을에는 자연스럽게 느긋한 시간을 즐기는 백발의 부부들만 남았다. 물론 쿠로오도 일찍이 마을을 떠난 사람 중 하나였다.
그가 마을을 떠나 육지로 나간건 벌써 10년전 이야기였다. 한동안 일에치여 방문하지 못했지만 작은 섬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요즘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그에게 섬의 모든 것은 훌륭한 피사체였다.
날이 어둑해 질 때까지 셔터를 눌러대던 그는 달이 떠오르는 걸 보고 해안가로 걸음을 옮겼다. 해안가를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나무가 우거진 좁은 길이 하나 나오는데 그 나무를 헤집고 들어가 길을 따라가면 낮고 가파른 절벽이 하나 나왔다. 사실 절벽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낮은 곳이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이곳에서 다치는 사람이 많았다. 심지어 수십 년에 한 번씩 익사한 시체가 나온다는 소문이 돌아, 마을 어른들은 절대로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사실 그 역시 이 근방에서 두 차례정도 정신을 잃은 적이 있지만, 어머니가 걱정하실 것을 염려해 아무에게도 이야기를하지 않았다. 아마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아신다면 절대 이곳에 얼씬도 못하게 하실게 분명했다.
그는 절벽에 걸친 보름달을 배경으로 한참동안 셔터를 눌러댔다. 어두운 바다는 달빛을 받아 노란빛으로 일렁였고,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절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그의 심장이 거세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왜인지 바다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바다가 그에게 손짓을 하는 듯했다. 마치 자신에게로 다가오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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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쿨럭 거리며 물을 뱉어낸 쿠로오가 무거운 두 눈을 깜박였다. 물에 젖은 온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괜찮아?”
한참을 숨을 몰아쉬던 그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절벽위로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린 여인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쿠로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바다에 빠졌어 너. 내가 발견했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물에 빠져 죽었을 걸?”
“아, 감사합니다.”
“말 편하게 해. 어색하게 왜 그래.”
그녀는 노란 빛을 담고 있는 눈을 반달처럼 접으며 웃어보였다. 아름다운 그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간 쿠로오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도 빨리 올라와.”
“괜찮겠어? 내가 올라가도?”
당연하다는 듯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얇고 하얀 팔을 그에게 내밀었다. 무언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새하얀 피부였다. 그 부드러운 팔이 자신의 손에 잡히자 별안간 쿠로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자신의 얼굴이 붉어진게 들킬까 서둘러 그녀를 절벽 위로 끌어 올렸다.
“아.......”
“역시 놀랐네.”
놀랍게도 그녀의 하반신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고, 그는 여인도 아니었다. 붉은색의 비늘로 뒤덮여 반짝이는 그녀, 아니 그의 하반신은 동화나 영화에서 나올법한 인어의 것이었다.
“잠시만, 내가 지금 헛것을......”
“아니야. 넌 제정신이고, 난 인어야.”
쿠로오는 찬찬히 그의 몸을 훑었다. 허리께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금발이며, 정수리를 뒤덮고있는 검은 뿌리. 달빛을 옮겨둔듯한 황금빛의 눈동자. 오밀조밀 모여 있는 이목구비. 난생 처음 느껴보는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 거기다 어여쁜 비늘로 덮여있는 하반신. 꿈이나 헛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쿠로, 널 기다렸어.”
“나를?”
“응. 정말로 보고 싶었어.”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던가?”
그는 미간을 구기고 기억을 더듬었지만 그의 기억 어디에도 이런 인어를 만난 적은 없었다. 이런 아름다운 존재를 만났다면, 절대로 잊을리 없었다.
“글쎄, 너에겐 처음이겠지만 나한텐 아니야.”
“날 본적이 있어?”
“수십 년 동안 여기서 널 기다렸어. 네가 다시 한 번 날 찾아와주기를 바라면서. 너와의 짧은 추억을 수천 번 되새기면서, 쿠로 널 그리워했어.”
그는 장난과는 거리가 먼 아주 다정한 말투와 눈빛으로 쿠로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살며시 쿠로오의 뺨 위에 손을 얹었는데, 그 손길에는 애정이 잔뜩 어려 있었다.
“사랑해, 사랑해. 쿠로.”
쿠로오는 자신의 품을 파고드는 그를 말없이 품에 안았다. 생전 처음으로 쿠로오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자신의 품에 안긴 그에게 심장소리가 전해질까 무서웠다.
“이름이 뭐야?”
그는 쿠로오가 자신의 이름을 물은 게 기쁜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켄마, 코즈메 켄마.”
“아.....켄마, 왜 나를 기다린 거야?”
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쿠로오의 눈꺼풀에 입을 맞췄다.
“널 사랑하니까. 네 기억을 소중하게 여기니까.”
그는 멍하니 켄마를 바라봤다. 인어에게 홀린다는 게 이런 것일까. 왜 이 낮은 절벽에서 자꾸만 사람들이 다쳤는지, 왜 물에 빠져 죽는 사람이 나오는지. 그는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 역시 비슷한 운명이 되리란걸 직감했다.
“켄마. 난 네가 궁금해.”
“쿠로, 네가 원하는건 뭐든지 알려줄게.”
환한 켄마의 미소에 그는 심장이 멎을 듯했다. 두 사람은 낮은 절벽에서 손을 맞잡은 채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서서히 달이 지자, 켄마가 별안간 그에게 애원했다.
“키스해줘, 쿠로.”
온몸이 으스러져도 괜찮다. 물에 빠진 시체로 떠올라도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 이 아름다운 존재와 입을 맞출 수만 있다면.
쿠로오는 조심스럽게 그의 부드러운 입술을 삼켰다. 그의 눈에서 떨어져 내린 눈물이 두 사람의 입술을 적셨다. 꼭 영원할 것만 같은 입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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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입맞춤이 끝나고 입술을 뗀 쿠로오는 푹 고꾸라져 또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는 아무런 미동도 없는 쿠로오를 품에 끌어안고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때, 저 멀리 풀숲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여간, 너도 정말 유별나.”
“아아, 야쿠. 잠시만, 아주 잠시만 기다려줘.”
그의 처절한 외침에 야쿠는 짧게 혀를 차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켄마, 너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람을 십 년동안 기다렸어. 그리고 이 상황은 그 때랑 똑같아. 쿠로오가 기억을 잃으면 괴로워하는 건 너잖아. 애초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말던가.”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이야. 이제 쿠로를 놔줄 거야.”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쿠로오를 껴안은 그의 팔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넌 십 년 전에도 똑같은 소리를 했어. 그리고 이십 년 전에도. 그래놓고 오늘도 바다로 쿠로오를 홀려냈잖아. 너 정말 이기적 인거알지?”
“응, 알아. 알지.”
“이제 넘겨줘. 동이 트기 전까지 집으로 데려 다 놔야해.”
넘치는 눈물에 켄마는 제대로 된 숨을 쉬지 못했다. 그는 겨우 울음소리를 참으며 끅끅 거리더니 쿠로오를 껴안은 팔에 슬며시 힘을 풀었다.
“간다.”
쿠로오를 업은 야쿠가 안쓰러운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쿠로오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자 켄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악을 쓰며 울었다.
“아, 제발, 제발 가지마. 쿠로. 날 기억해줘. 널 추억으로만 남기긴 싫어, 날 기억해줘. 제발.”
*
너를 사랑한 게 죄였다. 나는 그 벌을 받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게 벌이 아니라면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 없었다. 인어의 키스는 기억을 지운다. 너는 나를 잊은 채 살아가겠지만, 나는 여전히 나를 잊은 너를 사랑한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벌이었다.
#후기
쿠로켄을 오랫동안 팠는데 직접 연성하는 건 처음이네요 :) 인어켄마 상상만해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번에 하이큐 계도 새로팠으니 저와 친하게 지내주세요!! 참여하신 모든 분들 마감하시느라 고생 많으셨고 주최님 좋은 합작 열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쿠로켄 결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