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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안셔스- 변치않는 사랑, 행복
by. 더키(@ducky_ya)

 

“우응….”

잠결에 옆에 있을 이를 끌어안으려던 손이 허공을 갈랐다. 허전한 옆자리에 쿠로오는 잠기운이 가득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잠들기 전부터 자신의 옆에 누워있던 이는 온데간데없고 구겨진 시트 자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쿠로오는 그걸 멍하니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찾는 이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쿠로오는 거실로 나가자 보이는 동그란 뒤통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침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창문 앞에 앉아있는 이의 뒤에 선 쿠로오는 자연스럽게 뒤에서 팔을 뻗었다.

“일찍 일어났네, 쿠로.”

“옆자리가 허전해서. 잘 잤어?”

“응.”

뒤에서 끌어안은 채 켄마의 뺨에 쪽쪽 입을 맞추던 쿠로오는 그의 관자놀이 부근에 입술을 꾹 누르며 창틀에 놓인 화분을 쳐다봤다. 곧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은 식물을 보는 검은 눈동자에 조금 못마땅한 빛이 서렸다.

작년 여름의 끝자락 무렵이었다. 켄마가 갑자기 알 수 없는 물건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아 직접 찾아보고 나서야 그것이 꽃 파종을 위한 도구임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무슨 꽃 키우기냐고 물어도 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저 분주하게 씨앗을 파종시키고, 발아한 싹들을 매일 들여다보기 바빴다. 자라고 있는 것인가 싶게 성장이 더뎠음에도 켄마는 변함없이 정성을 쏟았다.

쿠로오 역시 처음에는 아주 작았던 씨앗에서 싹이 트이는 것을 보고 신기해했다. 무슨 꽃인지 몰라 얼른 자라서 꽃을 피우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이름 모를 꽃은 성장이 매우 더뎠고 쉽게 죽었다. 싹의 절반이 한 번에 죽어버린 이후 이름 모를 꽃에 켄마가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결국 한 송이만 살아남은 꽃을 애지중지하는 켄마에게 티를 낼 수 없어 더 답답했다.

요즘은 여름이 되며 아침 일찍부터 햇살이 강해진 탓에 덩달아 켄마도 부지런해졌다. 햇살을 너무 강하게 받으면 시들시들해진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해가 들어오는 것에 맞춰 화분을 옮겨주고 혹시나 흙의 표면이 마르진 않았는지도 확인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쿠로오의 손이 허공을 갈라야 했던 이유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무럭무럭 자라는 것 같던 꽃은 얼마 전부터 꽃망울을 키우고 있었다. 겨우 살아남은 한 송이의 꽃이 망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쿠로오는 제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말했다.

“얼른 피었으면 좋겠다.”

“응.”

쿠로오의 말에 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게 또 귀여워서 쿠로오는 참지 못하고 품에 안긴 켄마를 더 꼭 끌어안았다. 덥다며 투덜거리면서도 제게 등을 기대는 것이 사랑스러웠다. 일어나자마자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순식간에 사라진 주말 아침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쿠로.”

오랜만의, 그것도 금요일에 하는 정시 퇴근과 다녀왔다는 말에 곧장 들려오는 어서 오라는 대답은 쿠로오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목소리가 들려온 거실로 달려가 켄마를 품에 끌어안은 쿠로오는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눌렀다.

“저녁은 먹었어?”

“아니. 일찍 온다고 했잖아.”
“배고프면 먼저 먹지.”
“그 정도로 고프지는 않았어. 같이 먹고 싶기도 했고.”

“-지금 좀 감동 받은 것 같아.”

“알겠으니까 나 좀 놓고 씻고 와.”
얼른 씻고 오라는 말이 신혼부부의 대화 같아서 쿠로오는 부러 켄마를 끌어안고 놔주지 않다가 배고프다는 말에 후다닥 욕실로 향했다. 그런 애인의 모습을 보며 켄마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밖에서는 능력 좋은 사회인이면서 자신의 앞에서만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이 귀여웠다. 서로가 좋아 죽겠는 건 두 사람 다 마찬가지였다.

빠르게 씻고 나온 쿠로오는 켄마와 저녁을 먹고 과일을 먹으며 TV 앞에 앉았다. 시끄러운 브라운관을 무심히 보던 쿠로오의 검은 눈동자가 흘깃 옆에 앉은 켄마를 향했다.

반쯤 감긴 눈꺼풀에 호박빛 눈동자가 거의 가려졌다. 대학생이지만 벌써 여러 일을 하고 있으니 피곤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현재 사는 집에는 공간이 부족해 필요한 장비를 둘 곳이 없어 밖에서 작업을 하고 돌아오는 탓에 뒤늦게 지금이 대학교 종강 시즌인 것을 떠올린 쿠로오의 얼굴에 아차 하는 빛이 떠올랐다. 그는 빨리 여기보다 넓은 곳으로 이사해서 작업실로 쓸 공간을 마련해줘야겠다 생각하며 천천히 TV의 볼륨을 낮췄다.

“나 안 자.”

“응. 내가 졸려서 그래. 우리 자러 가자.”

잠기운이 가득한 목소리로 안 잔다며 웅얼거리는 켄마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쿠로오는 아예 TV를 꺼버렸다. 졸리지만 움직이는 것이 귀찮은지 뭉그적거리는 켄마를 그대로 안아 올린 쿠로오는 성큼성큼 방으로 향했다.

“꽃, 봐야 하는데….”

침대에 눕히고 이불까지 꼼꼼히 덮어주는데 들려오는 소리에 쿠로오는 엄지손가락으로 켄마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었다.

“내가 확인하고 올게. 얼른 자.”

“응….”

빨리 오라는 말에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그러겠다 대답한 쿠로오는 곧장 화분 앞에 섰다. 지난주 주말까지만 해도 꽁꽁 닫혀있던 꽃망울이 크게 부풀어 있었다. 연한 분홍빛을 띠는 망울에 이상이 없음을 살피고 나서야 쿠로오는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 켄마의 옆에 누웠다. 그새 색색거리며 잠든 켄마를 품에 가둔 쿠로오도 눈을 감았다. 조용한 밤과 잠든 켄마의 숨소리가 평화로웠다. 그 덕분일까.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쿠로오는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일찍 잠들어서인지 어슴푸레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할 때 켄마의 눈이 반짝 떠졌다. 시야가 또렷해지자마자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쿠로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 양쪽을 베개로 꾹 누르며 자던 쿠로오의 잠버릇은 이제 한쪽만 누르며 자는 자세로 바뀌었다. 옆에 누워있는 켄마를 안고 자느라 바뀐 자세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켄마는 쿠로오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제 어깨를 감싸던 팔이 저를 끌어안는 것이 느껴졌다. 잠결에도 자신을 끌어안는 쿠로오에 가볍게 웃음이 터졌다. 오래된 버릇이라 쉽게 고치지 못하던 것이 자신과 함께 살며, 정확히는 같이 자기 시작하며 변했다는 사실에 가슴 한쪽이 간질거렸다.

연애는 고등학생 때부터였지만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은 켄마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진학한 학교는 달랐지만 다행히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방을 구하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동거였다.

그러니까 이 방은 신입생이던 켄마가 4학년이 되고 2학년이던 쿠로오가 사회인이 되는 동안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은 곳이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켄마의 눈에 최근 쿠로오가 가진 불만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초보자가 키우기 쉬운 종이 아니라서 온종일 매달리곤 했는데 그게 불만이었을 터였다.

꽤 많은 씨앗을 파종했고 발아한 씨앗도 절반 이상이라 솔직히 조금 안심하기도 했다. 그런 켄마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 화분으로 옮긴 후 죽는 싹이 많아지자 절로 조바심이 일었고 모든 주의가 그쪽으로 쏠렸다.

그 탓에 제게만 향하던 관심이 분산되었으니 쿠로오가 불만을 가지는 게 이해는 갔다. 사실은 그게 꽃을 대상으로 질투하는 거라는 것을 알아서 조금 웃기도 한 켄마는 사랑하는 연인이 질투하는 것을 알아도 그만둘 수 없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강의실에 앉아 수업이 시작하길 기다리던 켄마의 귀에 주변에 앉아있던 학생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난 가을도 좋은 것 같아.”

“나는 봄! 봄이면 야외에서도 할 수 있잖아.”

“야외도 낭만적이긴 한데 날씨가 변수라-”

몇 마디 듣지 않아 금방 대화의 주제를 알 수 있었다.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이니까 제일 행복하게 하고 싶다.”

‘결혼식이라-’

결혼식, 결혼. 두 단어를 입안으로 굴리며 켄마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학생들의 말을 들으며 켄마는 속으로 그건 그렇지, 그럼 가을이 낫지 않나? 따위의 대꾸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머릿속에는 자신이 바라는 결혼식 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이 많은 건 불편하니까 가까운 사람만 초대하는 게 좋겠다. 그러려면 야외가 좋을 텐데…그럼 어쩔 수 없이 봄에 하는 편이 좋으려나. 여름은 너무 덥고 가을은 잎이 지니까 풍경이 별로 안 예쁠 테니까….’

꽃이 다 지기 전, 추위가 가신 어느 야외에 모인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 쿠로오와의 평생을 약속하는 날을 그리던 켄마의 얼굴에 설핏 자조(自嘲)가 섞인 미소가 지어졌다.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서약의 순간은 분명 아름다울 터였다. 그러나 거기까지.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제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켄마는 잘 알고 있었다.

불만은 없었다. 쿠로오와 사랑하며 평생을 함께하는데 모두의 앞에서 하는 맹세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그 아름다운 순간에 자신을 보며 웃는 쿠로오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나는 가을에 결혼하고 싶은데 그때도 은방울꽃을 구할 수 있을까?”

“벌써 부케까지 생각하는 거야?”

“부케를 빠뜨릴 수 있어? 아무튼, 꽃말이 너무 좋아서 꼭 그 꽃으로 하고 싶은데 5월에 피는 꽃이라 가을에는 구하기 힘들 것 같단 말이야.”

“그러네. 부케에 쓸 꽃까지 생각해야겠구나.”

끊임없이 이어지던 학생들의 말소리는 교수가 강의실로 들어오며 끊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의를 시작한 교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켄마는 다른 생각에 사로잡혔다.

‘결혼해야겠다.’

식을 올린다거나, 서류를 내고 법적으로 인정받는 부부가 될 수 없단 것쯤은 알았다. 알고 있지만 그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적어도 켄마는 곁에 서로가 있기 위한 약속에 사람들 앞에서 식을 올리는 것도,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배우자가 될 사람과의 약속이니까.

‘그러려면 우선-’

켄마의 머릿속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순간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새로운 계획이 들어섰다.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잡아두기 위한 달콤한, 쿠로오가 뿌리칠 수 없을 유혹적인 계획이었다.

 

작년 즈음의 일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면 위로 올라와 있었다. 깨어났을 때보다 훨씬 밝아진 것을 느낀 켄마는 쿠로오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침대를 빠져나왔다.

쿠로오가 서운해하고 질투하는 것은 알지만 애지중지하며 꽃을 키우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작년 그 날 켄마가 세운 그 계획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이 꽃이었다.

‘조금은 피었으려나.’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웅크리고 있는 꽃망울은 좀처럼 필 생각을 안 했다. 뭔가 잘못된 것인가 싶어서 찾아봐도 꽃봉오리가 생기면 며칠 지나지 않아서 피었다는 글뿐이었다. 그에 비해 자신의 꽃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피어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정말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불안했다.

‘진짜 그냥 집을 사서 정원을 꾸미는 편이 더 성공률 높았던 거 아냐…?’

잰걸음으로 거실로 나서던 켄마는 화분을 보고 우뚝 멈춰섰다. 햇빛이 들어서기 시작한 창가에 꽃 한 송이가 피어있었다. 한참을 웅크리고 있던 것은 지금을 위해서였다는 듯 화사함을 뽐내며 피어있는 꽃을 보며 켄마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활짝 핀 흰 꽃은 한 송이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했다. 겹꽃이라 언뜻 보면 장미와 비슷했지만, 장미와는 다른 화려함이었다. 햇살이 닿아 더 희어 보이는 꽃을 가만히 보는 켄마의 뒤에서 뻗어 나온 팔이 익숙하게 어깨를 끌어안았다.

“쿠로?”

“드디어 피었네.”

예쁘다. 제 관자놀이에 가볍게 닿는 입술을 느끼며 켄마는 자연스럽게 너른 품에 등을 기댔다. 그렇게 같이 잠시 서서 피어난 꽃을 보다가 켄마가 입을 열었다.

“나 이제 곧 졸업이야.”

“그러네. 벌써 4학년도 한 학기 남았잖아.”

켄마의 말에 쿠로오는 새삼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사실 켄마와 함께 있으면 늘 그랬다.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하루하루가 짧게만 느껴졌다.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그래서가 아닐까, 쿠로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졸업하면 이사 갈까? 뭐, 바로는 무리겠지만.”

“…갑자기?”

“음, 갑자기는 아니야.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여긴 네가 쓸 작업실을 둘 수가 없잖아. 그게 마음에 걸려서. 처음 함께 산 집이니까 여기도 소중하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역시 이사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해.”

네 생각은 어떻냐는 쿠로오의 말에 켄마의 입꼬리가 살짝 움찔거렸다. 아무 말 안 하고 있었던 것뿐이지, 쿠로오 역시 자신과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는 게 기뻤다.

“그것도 그렇네.”

그러니 이제 자신이 그리고 있는 미래를 쿠로오에게 말할 차례였다.

“근데, 쿠로.”

“응?”

“졸업하고 나면, 이사 말고 다른 걸 하기에도 충분한 것 같아.”

“뭐가? 하고 싶은 거 있어?”

“응.”

쿠로오가 그게 뭐냐고 묻는 것보다 이어지는 켄마의 말이 더 빨랐다.

“결혼.”

“…응?”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쿠로오는 빠르게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켄마는 그런 쿠오로를 기다려주지 않고 몸을 비틀어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대학을 졸업한 후면 결혼하기에도 충분한 나이인 것 같다고.”

이사 말고도. 그렇게 말하는 켄마의 목소리는 오늘 먹고 싶은 메뉴를 말하듯 단조로웠다. 그에 반해 쿠로오의 검은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누구랑? 결혼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그렇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목에 뭔가 걸린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결혼. 그래, 결혼. 결혼 좋지. 할 수만 있다면 성인이 되자마자 했을 거다. 하지만 아직 이 나라는 동성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쿠로오에게 결혼이란 현실이라는 벽이 허락하지 않은 몇 가지 중 하나였다. 그것이 못내 아쉽기는 했어도 불만을 품진 않았고, 그렇게까지 간절하게 원한 적은 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켄마의 입에서 결혼하기 충분한 나이가 되었다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어? 어어…. 그, 렇지.”

쿠로오는 허둥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켄마 정도면 대학교 졸업하고 결혼하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능력이 다 되는데 못할 것도 없겠지. 쿠로오가 알고 싶은 것은 상대였다. 그가 알기로 켄마에게 결혼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다.

혹시. 정말 아주 혹시. 자신이 아닌, 미래를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 걸까? 그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아픈데 정말이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쿠로.”

켄마는 혼란으로 일그러지는 쿠로오의 뺨을 아프지 않게 꼬집으며 그를 현실로 불렀다. 얼굴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나랑 결혼하자.”

“…어?”
멍한 얼굴로 정신을 못 차리는 쿠로오의 얼굴을 붙잡아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켄마는 말을 이었다.

“법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는 없겠지. 근데, 나 그런 거 없어도 돼. 솔직히 필요 없어.”

다정함을 담은 나직한 목소리가 거실을 채우는 아침 햇살을 타고 흘렀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 하는 게 결혼이잖아. 그런 사람이 있는데 서류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포기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나랑 결혼하자. 쿠로오 테츠로.”

아아. 쿠로오는 울고 싶었다. 잠깐이지만 켄마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닐까 불안해했던 자신이 부끄러웠고, 미안했고, 그걸 알면서 탓하지 않고 결혼하자 말해주는 켄마가 고마웠다.

“이거.”

켄마는 쿠로오에게 화분을 건넸다.

“프러포즈에는 꽃이 있어야지.”

프러포즈. 꽃. 그제야 쿠로오는 자신이 질투했던 이 꽃은 켄마가 자신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준비했던 꽃이었으며, 켄마는 작년부터 자신에게 청혼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시안셔스야. 맘에 들어?”

새하얀 꽃잎이 결혼식의 부케를 연상케 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흰 꽃으로 선택했으리라. 흰색만큼 결혼식에 잘 어울리는 색은 없을 테니까. 목이 메어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쿠로오를 보며 켄마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정말이지 제 연인은 귀여웠다.

“그럼, 나랑 결혼해 줄래?”

쿠로오는 그대로 켄마를 끌어 앉았다. 이 작은 존재가 자신에게 주는 행복이 너무 커서 무서웠다. 이 행복이 사라지면 자신은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응. 할래. 너랑 결혼할래. 나랑 결혼해 줘, 켄마.”

켄마는 조심스럽게 한쪽 팔을 들어 쿠로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훤칠한 청년일 쿠로오가 자신에게는 그저 한없이 사랑스러운 연인일 뿐이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단 한 사람.

“사랑해.”
그의 목소리에 담긴 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기꺼워 켄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도.”

쿠로오의 등을 토닥이며 켄마는 생각했다. 화분을 내려놓고,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눠야지. 그때 왜 이 꽃을 프러포즈 꽃으로 정했는지도 말해 줘야겠다.

장미만큼이나 화려한 겹꽃으로 꽃말마저 사랑하는 이에게 주기 완벽한 이 꽃은 최근 결혼식 부케로도 사랑받는 꽃이라고. 그럼 꽃말을 물을 테니 알려줘야지. 리시안셔스의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 혹은 ‘행복’이라고. 그러니까, 지금처럼 변함없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함께 살아가자고.

그렇게 또다시 시간이 흘러 켄마가 졸업하고 난 후 어느 날, 작은 주택의 앞마당에서 두 사람만이 참석한 결혼식이 치러졌다. 그런 그들의 앞에는 새하얀 리시안셔스가 가득 피어있었다.

#후기

합작 덕분에 오랜만에 잔잔한 쿠로켄을 쓸 수 있었어요:)

잘 아는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을 좋아해서 큰 사건 없이 그냥 서로 사랑하는 글을 쓰게 됐네요. 행복한 쿠로오와 켄마를 쓰다 보니 덩달아 저도 행복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합작이라는 좋은 기회가 있어서 행복했고, 부디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0.08.19 Kuroken Flower Collaboration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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