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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동백꽃- 당신은 나의 사랑을 경멸하는 것입니까?

여름의 동백꽃

by. 이체(@IChe_HQ)

 

*원작의 성인이 된 쿠로, 켄마의 '직업'과 '외형'을 반영해 쓴 글입니다. 그 외의 내용은 제 창작이니 중요한 스포는 없습니다.

 

때는 매미 울음 소리에 스피커 볼륨을 올리던 여름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장맛비가 내렸고 여름이 푸른색이라는 것을 반증하듯 먹구름이 세상의 색을 집어삼켰었다.  

여름, 나는 켄마의 방에서 동백꽃을 발견했다.

 

***

그 해의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티브이에서는 연일 지나친 도시화의 비극이라는 둥,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이라는 둥 암울한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루한 뉴스를 보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방송 끝자락에 나오는 스포츠 뉴스를 챙겨 보기 위함이었다. 입사 후 첫 여름 휴가... 휴가를 받은 첫날부터 하늘에서는 구멍이 뚫린 것 마냥 비가 쏟아졌다. 현관문 앞에서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기를 네 번, 나는 본가에 가기를 포기하고 이틀째 베개를 안고 소파에 틀어박혔다.  밀렸던 집안일을 다 해치우고 어김없이 리모콘을 든 둘째날 점심쯤 직업병처럼 스포츠 뉴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뉴스에서 첫사랑을 보았다.

 

첫사랑.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보통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이 나이쯤 되면 다들 설레는 감정은 어린애같은 감정으로 취급하나? 아님 그 감정에 무뎌져 담담해지려나. 나 또한 첫사랑의 대상이 오랫동안 붙어다닌 소꿉친구였기에 지금쯤이면 나는 그 단어에 무뎌졌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그를 좋아하기 시작한 7살 때 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걸까... 내가 멍하게 생각을 잇는 도중에도 프로게이머이자 대표이사이자 유튜버이자 대학생이자....란 자막을 달은 화면 속 켄마가 비교적 캐주얼한 오피스룩을 입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 조용한 듯 해도 할 말은 다 하고 살았었지. 못 보던 옷인데 새로 샀나? 오늘은 쉬려나. 어쩌다 세상 귀찮아하던 켄마가 저런걸 하고 있냐. 오야? 이제 다 컸네? 같은 생각을  꼬리 물 듯 이어나갔다. 결국 마지막에 정신을 차렸을 땐 우비를 입으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 달 전쯤 켄마가 그 특유의 담담한 말투로 보낸  ' 나 대학 방학이니 들려' 라는  문자를 지키러 가는거지 절대 충동적인게 아니라고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택시를 잡아타고 무작정 본가 주소를 불렀다. 어차피 옆집이니 어디를 가던 거기가 거기였다. 도쿄 끝자락에서 끝자락으로 이동한 나는 택시비를 확인할 새도 없이 지갑 속에 있던 화폐를 기사님 손에  탈탈 털어놓았다. 그리곤 거스름 돈도 챙기지 못하고 켄마 집까지 가방을 머리를 위에 쓰고 달렸다.  원정 갈 때 쓰던 그 가방에, 아무 생각 없이 뛰쳐나와 입고 있던 고등학교 체육복, 그리고 뒷축이 닳아버린 그 때 그 러닝화까지. 마침내 켄마 집 앞에 선 나는 영락없이 네코마 고교 배구부원으로 돌아가 있었다. 비 오는 날 기어코 가져온 우산을 켄마에게 쥐어주고  먼저 집에 달려들어가던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문 앞의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떨어지는 빗소리에 맞춰 한참을 쉼호흡했다. 결국 아무렇지 않은척 인터폰 앞에서 한 쪽 입꼬리를 올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고민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뒤에서 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도니 우산을 접고 있는 켄마가 보였다.

 

" 왔어? 오래 걸렸네. "

 

왔어? 라니...나도 모르게 관자놀이를 짚었다. 못 본지가 1년이 넘었는데 어제도 만난듯한 저 익숙한 인사가 나는 너무 그리웠는지. 방금까지 억지로 올리던 한 쪽 입꼬리가 자연스레 광대까지 올라왔다. 

 

***

"뭐야 , 머리 더 길었네?"

 

"... 쓸데 없는 소리 말고 씻고 나와. 물 떨어져. 쿠로. "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온다고 간만에 집 밖에 나갔다 왔다는 켄마는 나와 달리 아주 많은게 달라져 있었다. 노란 염색모는 거의 사라진 채 끝자락에만 남겨져있었고 머리카락은 어깨 밑까지 내려와있었다. 노란 방 안에는 각종 방송 장비들이 즐비하고 카메라에 보일 것 같은 부분을 제외한 채 다른 곳은 어질러져 있었다. 예전에 문제집이 꽂혀있던 책꽂이엔 배구공 하나를 제외하곤 코딩 서적들로 가득했다.  레몬향 샴푸를 쓴다는 건 변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부모님께 집을 마련해드린 후 혼자 본가에서 사는 켄마의 공간은 좀 낯설었다. 나만 알던 그 방이 스트리밍을 통해 비춰지고 내가 알던 부분이 달라졌다는게 왠지 모르게 불쾌했다. 그가 더 이상 게임에 묶여있지 않다는게, 내가 떠난 공백을 채웠다는게, 분명 뿌듯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가 홀로 섰다는게 묘했다. 방 안에 있는 켄마의 액자 속 사진엔 내가 빠짐 없이 들어있는데 그 외에는 내 흔적이 없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공간이 켄마의 집엔 더 이상 없었다.

 

화장실에서 머리가 복잡해진지 30분.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쿠로? 나도 씻어야하니까 빨리 나와."

 

복잡한 생각을 부수는 켄마의 목소리에 운동복을 입고 화장실을 나오자 물에 빠진 고양이 꼴인 켄마가 망설임 없이 화장실로 직진했다.

 

" 일단 씻고 나와. 나 침대에 있는다?"

 

켄마가 고개를 끄덕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침대에 올라가지 못했다. 잠깐 떨어져 있었다고 감정이 물 밀듯 밀려오는 주제에 그럴 배짱이 나올리가 없었다. 정말 어릴 땐 무슨 생각으로 켄마 집에서 뒹굴었는지. 아님 내가 너무 소심해진건지. 헛웃음이 나오는 걸 참으며 어질러진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곤 청소기를 돌릴까 말까 고민하던 중, 들려온 켄마의 목소리에 덜컥 청소기를 놓칠 뻔 했다.

 

"쿠로 나 수건 가져다줘."

 

수건을 가져다 달라는 켄마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지 않고 한쪽 귀에서 귀로 빠져나갔다.

 

 

"어?"

 

" 옷장에 있어. 추워."

 

 고등학교 때까지만해도 같이 합숙도 하던 사이니 켄마는 아무렇지 않겠지. 그게 당연한건데. 수건을 가져달라는 말에 내 얼굴이 붉어졌다. 체육복을 입은게 문제였는지 사춘기 청소년도 아니고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문고리에 수건을 걸어놓고 연신 손부채질을 하자 곧이어 켄마가 나왔다. 켄마가 입은 옷은 언제나처럼 캐주얼했다. 그렇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청소하면서 본 수 많은 정장들이 떠올라 아무말을 지껄여댔다. 

 

"켄마, 요즘 정장 입고 다녀? 어~ 실망이야~? 내가 그렇게 입어달라고 할 때는 안 입어주더니?"

 

내가 느끼는 감정의 만분의 일만 드러내도 그걸로 족했다. 감정을 숨기기에 급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체가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였기에. 그러나 내 말에 켄마는 젖은 머리를 털다 말고 수건을 내려놨다. 그리곤 날 빤히 노려봤다.

 

"쿠로...지금 1년 만에 만나서 그런 것 밖에 안 궁금해? 아니, 애초에 왜 온거야?"

 

켄마의 동공이 작아지는 걸 봤다. 평소처럼 귀찮아서 투정부리듯 한 말이 아니라는 걸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 왜 왔냐니-? 이 몸이 친히 휴가내고 만나러 와줬는데." 

 

입술을 내밀고 볼멘소리를 해도 이 상황을 넘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애초에 싸워도 둘 밖에 없는 장소에서, 그것도 켄마를 1년 만에 보는 상황에서, 내가 이성적인 사고를 하리란 불가능했다.

 

" 쿠로오 테츠로. 그게 그 뜻 아닌거 너도 알잖아? 몇 달 동안 너 문자 답장도 제대로 안 보낸 거 알아? 그래 안 만난건 바빴다 치자. 그렇다고 갑자기 이렇게 와서 이건 또 뭔데."

 

켄마의 조금씩 커지는 목소리에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한 방울.

 

두 방울.

 

 빗소리가 아닌 켄마의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내 귓가를 가득 매웠다. 

 

 

" 바빴어. 그래. 너도 바빴겠더라. 나도 그건 변명이 안 된다는거 알아. 연락 안한 이유? 아무 이유 없었어. 코즈메 켄마, 나한테 뭘 바라는건데?"

 

횡설수설하는 나를 바라보는 켄마의 눈은 내가 한번도 보지 못한 눈동자였다. 눈빛만으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는데. 저 동공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켄마가 아니었다.  덜컥 겁이 난 나는 찬찬히 상황을 되짚어보다가 깨달았다. 

보고 싶었다. 

그 한마디를 내뱉고 널 안고 싶었는데 달라진 모습에 난 더 이상 감정을 제대로 숨기지도 드러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 가슴속 책꽂이가 담아내기엔 차곡차곡 쌓인 너를향한 이야기가 너무 장대했는데. 그렇게 애매하게 꽂아둔 금서가 조금씩 흘러나와 너에게까지 갔나 보다.  나도 참 멍청하지. 글쎄, 널 함부로 하기엔 떨어져 있는 동안 내가 넘겨본 내 마음이 가볍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  무슨 배짱으로 널 만나러 간걸까?  나는 도무지 내 사랑을 보고 경멸하는 너를 마주할 수가 없었다. 이미 너가 싸늘하게 경멸한다고 눈으로 말하고 있는데 그걸 네가 입으로 말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쿠로오. "

 

켄마가 들고 있던 수건으로 눈을 가렸다. 

 

 

"..."

 

다섯 발자국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입을 잘근 씹고 있는 나를 본 켄마가 먼저  입을 뗐다.

" 됐어. 쉬고 있어."

그리고 켄마가 뒤를 돌아나가려고 할 때 나는 반사적으로 튀어나가 그를 끌어안았다.

 

" 미안해. 너무 미안해...."

 

경직되는 켄마의 몸이 느껴져서 나는 죄악감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보고 싶었어."

 

 그러자 굳었던 켄마가 안고 있던 내 팔을 풀었다. 그리곤 뒤를 돌아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날 밤 나는 켄마의 베개 밑에서 나는 흰 동백꽃을 발견했다.

***

 

그렇게 나는 지금 첫사랑과 연애 중이다. 무더웠던 여름을 한층 누그러뜨리는 장마를 지나 결국 해를 맞이하긴 했다. 물론 남은 이틀의 휴가는 뜨겁게 켄마의 집에서 보냈다. 그 이후 출근할 때도 나는 다른 의미로 뜨거운 나날들을 맞이하고 있다. 켄마랑 사귄다는 소리에 배구부원들의 전화랑 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와서... 물론 켄마는 부정하듯 여전히 담담한 메세지로 화답하긴 하지만 최근에 방송에서 여친있냐는 말에 애인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 날 충동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일은 아직도 미스테리다. 무엇보다도 한여름에 왜 겨울에 피는 동백꽃이 침대 위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행운의 부적이라 여기고 이것저것 인터넷에 검색해보다가 나는 오늘 꽃말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나의 사랑을 경멸하십니까?]

#후기

동백꽃은 입춘이 되기 전 겨울에 피는 꽃이죠. 제가 알기론 봄까지도 핀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동백꽃을 여름에 피워내보았어요. 저 둘은 이제 혹독한 겨울을 지내고 봄을 맞이하게 될테니깐요.  사실 담고 싶은 내용이 너무너무 많았는데 저의 글 실력이 미천하여... 원하는 만큼 못 담아낸거 같아 너무 아쉬워요. 잔잔한 글을 써보자  결심했는데 제가 볼 땐 잘...모르겠네요!!!!! 합작을 열어주신 주최님 너무 감사하고♡♡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박수를!!!(우리 모두 쿨켄 합시다)

 © 2020.08.19 Kuroken Flower Collaboration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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